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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Mar 06. 2023

13년 만의 사춘기 졸업

사춘기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즈음인 것 같습니다.

창문을 쾅 닫고 "바람 때문에 세게 닫힌 거라고!" 하며 울던 기억이 나거든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며 30분이 넘도록 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창문 밖은 참 환한데, 내 마음은 어둡구나' 하며 절절한 눈물을 흘렸더래요.


사춘기가 확실하지요?


말하고 보니 참 귀여운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저는 미간에 주름 딱 짓고 밥을 깨작거리는 사춘기 여학생이 되었어요.

다이어트를 한다며 같이 밥 먹기를 거절하고, 부모님이 하는 모든 말이 틀린 말 같고, 잔소리 같았어요.

특히나 저는 사춘기가 좀 이상하게 와서 반년동안 채식도 했답니다.

세상을 향한 일종의 반항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사춘기가 세게 왔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또 아닙니다.

저는 공부를 꽤 잘하는 모범생이었거든요.

가출을 한다거나 술, 담배 등의 일탈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음, 그거 안 한 게 자랑인가 싶긴 하네요. 아무튼!


어느 순간 저는 집 안에서 실세가 되어있었습니다.

공부할 때 가족이 티비보면서 크게 웃으면 조용히 하라며 짜증 내고, 엄마가 저녁을 해놓아도 안 먹고 햄버거를 사 와서 먹기도 하고요.

어우 잠시만요. 저 인성논란 뜰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익명의 작가이기 때문에 그냥 솔직해지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방구석 양아치였습니다.

그 양아치는 어찌 저찌 소망하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대학이 집에서 멀었기 때문에 기숙사에 살기 시작했어요.

기숙사에 사니까 세상에 세상에 친구들이 저녁마다 부르더라고요.


이렇게 재밌을 수가!

그렇게 친구들로 가득 찬 대학생활을 보내고, 어쩌다 보니 대학원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원에 정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원 입시 준비를 열심히 해서 원하던 대학원에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벅찬 곳으로 와버린 거예요. 매일 12시간의 근무시간과 매주 두 번의 회의, 무엇보다 졸업을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년 내내 쫓기듯이 연구만 했던 것 같아요. 땅에 곤두박이칠까 봐 벌벌 떠는 벌새처럼요.

그 좋아하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다 끊고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2년 만에 대학원에 졸업한 저는 꽤 지쳐있었습니다.

쉬고 싶었어요. 풀썩 앉고 싶었습니다.

어디에 앉아야 하나요. 어디서 쉬어야 할까요.


이기적인 저는 이제야 집에 가고 싶어 졌습니다.

십수 년을 넘게 떠돌아다니다 돌아왔는데도, 아직도 거기 있는 나의 부모님


저는 13년을 돌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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