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의 첫인상이 최악이었던 것 치고 세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렇게 어여쁜 도시가 있구나 하며 감탄하고 있다.
무리하지 말자. 비엔나의 첫날 무리하다가 집에 갈 뻔했으므로 이번에는 지속적으로 되뇌었다. 무리 노우 무리 노우. 그래서 잘츠에 가는 날 아침은 밥도 대충 먹고 뒹굴뒹굴 거렸다. 오늘은 아무 일정 없이 이동만 할 거라며. 그렇게 막상 오후 네시쯤 잘츠에 도착하니, 뭔가 다운되는 기분?
생각보다 마을도 예쁘지 않고(오해였다.),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고(아니었다.), 날씨도 좋지 않은 것 같고(금세 좋아졌다.), 그렇다 보니 공허해졌다. 외로움은 실수를 남기는 법. 이전의 경험을 까먹고는 또 동행을 구해버렸다. 이번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다섯 시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길래 참석하기로. 두 명의 여성분이었는데, 그 둘은 뚱한 표정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울적한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싶으니, 광대가 되었다는 정도만... 그렇게 기운 쏙 빠지는 세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3만 보 걷는 것보다 더 지쳤다.
바로 눕고 싶었지만 내일은 자연경관을 보러 먼 여정을 떠날 예정이니까 미리 씻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바로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을 맞으니 빨려나간 기운이 총총히 들어오는 듯했다. 그리고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나길 잘했어.’
그분들 덕분에 한 번도 안 먹어본 굴라쉬도 먹어보았고, 사진도 찍었고, 겁먹지 않고 동네 구경도 했다. 사실 한식을 향한 갈망이 슬슬 역치에 도달하고 있었다. 참치김치찌개가 머릿속을 아른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대박인 점. 굴라쉬 맛 = 고추참치 맛. 먹을수록 속이 풀리면서 김치찌개 생각이 옅어졌다. 만세 만세 만만세였다.
또, 오랜만에 세 시간을 내리 말하는 경험도 했다. 가끔 이렇게 입운동을 시켜줘야 한마디도 안 하고 싶을 때가 돌아온다. 지금 딱 아무랑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걸 보니 입운동은 충분히 한 것 같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나를 작가라고 소개했다. 늘 직장인이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오늘의 나를 소개해야 할 것 아닌가? 하며. 내심 작가가 되고 싶었던 욕구를 해소시켜 보았다. 그들은 나를 작가로 봐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없었으니 상관없다. 한 번 이렇게 나를 소개해보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