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사람이 되겠다고 해놓고서는 무수한 도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고작 반나절동안 받은 도움만 해도 한 가득이다.
타지에서의 분리수거는 한국보다 난이도가 높다. 아침에 페트병 분리수거를 하러 갔다가 정작 어디에 버려야 하는 지를 몰라서 옆에 자전거를 들고 멀뚱히 서 있던 남자에게 sos.
시원한 물 하나 사려고 셀프계산대에 갔다가 독일어를 영어로 바꾸지 못하는 바람에 뒤에 있던 독일 아주머니께 sos.
잘츠부르크행 기차의 플랫폼이 어딘지 모르겠어서 인포메이션 아저씨께 sos. 이 정도도 못 찾는 사람은 아닌데 기차 출발 시간보다 세 시간을 먼저 왔더니 안내판에 아직 뜨지 않아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할 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일찍 도착했냐 하면 모든 약속에 일찍 나서는 편이다. 시간 여유가 많으면 두 시간 정도 먼저 나와 산책을 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기도 한다.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불편해지니까.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몸이 불편한 게 낫다. 몸이 불편한 건 싫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괴로워.
무한 sos 덕분에 수월하게 플랫폼 8번에 도착.
게다가 방금 전에는 혹시 몰라서 잘츠부르크행 기차가 여기로 오는 게 맞냐고 옆에 서 있는 네 아이의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어디 서 있으면 좋을지까지 직접 알려주셨다.
아, 편하다. 모든 게 쉽게 흘러간다.
원체 이렇게 살아왔다. 내가 알아서 할게 보다는 한 번 조언을 구해볼까? 의 편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나를 그렇게 좋아라 하셨다. 하라면 잘하니까. 나도 어련히 할 필요가 있으니까 시키는갑다 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빛을 발했다. 대학 입시를 위해서는 담임선생님의 도움이 필수였다. 입시학원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으나 내 형편에는 담임선생님 이상을 바랄 수는 없었다.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 동네에서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만큼 매년 실전에 투입되는 전문가도 없었다. 그때도 참 요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나만 하고 있었다는 게 말이다. 분명 우리 담임선생님은 입시 전문가이신데 나를 제외한 반 학우들은 선생님을 무시했다. 그래서 내가 덕을 본 것이다. 아무도 선생님과 면담을 하지 않으려 한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과 두 시간 넘는 시간 동안 면담을 했다. 우리 반은 총 30명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성적대 친구들 중에서 나를 빼고는 거의 전부가 재수, 삼수를 했다. 심지어 그렇게 간 대학이 현역 때 선생님이 추천했던 대학이었다. 그때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언을 잘 듣는 것도 재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는 민폐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으므로, 도움을 받은 후에 고맙다는 말을 확실히 전하고 있다.
특히 오늘의 thank you는 비밀의 뿌듯함을 더해주었는데, 그건 바로 쌩유라고 말했다는 것.
며칠 전 만난 알미언니가 미국인들은 땡큐라고 하지만 독일 악센트는 조금 다르다고, th를 s로 발음한다고 해서 땡큐 대신 쌩유라고 말해봤다. 도움을 준 이들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는데 혹시 악센트가 잘 전달이 되었나?
방금 제 악센트 좀 독일인스러웠나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 곧 잘츠부르크에 도착한다. 앞으로의 여행은 어떻게 펼쳐질까. 그나저나 외국인들은 잘츠부르크를 ‘잘츠’라고 말하는 걸 귀여워하는 것 같다. 귀여워 보이고 싶다면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