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름 Sep 14. 2024

코딱지만 한 디저트

윈도우 배경사진 아니고 직접 찍은 사진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에 가는 비용을 절반 이상 아끼기 위해 룸메이트 언니와 가족 할인 표를 구매했다. 그리하여 언니와의 오붓한 여행을 다녀왔다. 동행 싫다더니, 어느새 중독이 된 걸까. 하지만 중요한 건 밸런스. 내일부터는 혼자서 고독의 시간을 보내기로.


단 둘이서 12시간을 보냈으니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확실히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재킷 하나에 100만 원이 넘는 한 브랜드의 옷만 수년째 모으면서 가방과 신발은 만오천 원 선에서 끝내는 언니. 매년 한 달 넘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건 집 안에서 강아지와 눈 마주치기인 언니.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예술작품을 사랑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추선특선영화(엑시트, 베테랑, 신세계)인 언니, 고려대학교에 나온 엘리트 약사이지만 읽어주지 못할 악필인 언니. 고수는 먹지만 아몬드껍질은 먹지 못하는 언니.

나의 세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물음표살인마로 변신해 보았다. 이건 좋아해요? 저거는요? 그건 싫어요? 왜요?

언니에게는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 확고함이 있었다. 나에게는 없는 확고함은 단연 매력으로 다가왔다. 멋있어...

좋아하는 미술작품도 없고, 믿고 사는 브랜드도 없고, 양보 못할 음식도 없는 나. 무향 무취의 인간 같다는 생각이 들자 슬그머니 위축되었다. 그렇다고 추석특선영화를 싫어하고 아몬드껍질을 좋아하는 내가 언니의 취향을 복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저 언니처럼 자신이 어디에 돈을 쓸 때 행복한지를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행복해지는 건, 행복하잖아.


언니의 취향 중 하나는 손바닥보다 작은 고급 디저트를 사 먹는 것이라고 했다. 한 입 거리의 디저트. 끔찍하게 달고 크기도 감질나서 딱 싫어하는 부류였다.

하지만 언니는 디저트를 그 자체로만 즐기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기념일 두 달 전부터 미리 찜 해둔 디저트를 예약하고, 예약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에 들어가, 특별 대우를 받으며 디저트를 먹는 일련의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한 입이면 사라질 디저트에도 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런 건가! 처음 들어보는 세상에 궁금증 증폭.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언니가 집 가는 길에 사 먹을 거라고 했던 고급 초콜릿을 나 또한 먹어보고 싶어졌다.

언니를 따라 도착한 카페에서 시그니처 초콜릿을 마주해 보니 코딱지만 한 주제에 무려 4500원의 가격표가 붙어져 있었다. 한 입에 오천 원이라.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여행 중. 돈 쓰러 온 김에 다 경험해 보자. 심지어 이곳은 옛날부터 왕실에 디저트를 보급하던 전통 카페라고 하니 맛없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가 초콜릿이기도 하니까 중간 이상은 하겠지.

초콜릿.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솔직히 이 카페의 모든 디저트는 너무나 맛있어 보였다. 나는 코딱지초콜릿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입 만에 끝나는 초콜릿에 대한 아쉬움이 달콤함에 대한 기쁨보다 더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눈앞의 코딱지초콜릿을 사 먹지 않을 이유가 더더욱 없었다.

코딱지 치고는 조금 더 크다

10개 세트를 사는 언니 옆에서 딱 하나만 구매해 봤다. 벌써 아쉬운 마음으로 깨작거리며 한 입,

어머. 너무 맛있잖아. 머리가 띵 할 정도로 달았지만 그만큼 천천히 나누어 먹게 되던 코딱지초콜릿. 만만할 줄 알았는데, 엄청난 강적이었다. 한 입에 털어 넣지 못할 만큼 강렬한 맛. 이 맛에 먹는구나. 이 맛에 코딱지디저트를 찾아 먹는 거였어. 그 작은 디저트를 세 시간에 걸쳐서 먹었다.

하나 더, 취향은 나도 모르는 새 바뀌어있기도 하구나. 함부로 장담했다가는 행복을 놓칠지도 모르겠어.

나는 곧바로 언니가 잘 아는 한국 코딱지디저트 맛집 세 군데를 추천받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 조각씩 먹어볼 요량이었다.

이전 17화 장기매매가 무서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