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처음으로 수면제를 복용해 봤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약을 먹고 3~4분 후부터는 일어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던데, 나의 경우에는 수면제를 먹었다는 것 자체가 흥분스러워서 오던 잠도 달아나더라. 오히려 수면제를 먹지 않았으면 바로 잠에 들었을 텐데. 그럼 왜 먹었냐고? 그건 2층침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현 위치 잘츠부르크. 한인민박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은 4인 1실이고, 각 방은 2층 침대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1층. 알고 보니 민박집에 오래 묵는 사람들은 1층에 자게 해 주고, 하루이틀 짧게 묵고 떠나는 손님들은 2층으로 배치시켜 주는 듯했다. 문제는 우리 방이 너무나 더웠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층은 덥지 않았고, 2층이 유달리 더웠다는 것. 보일러는 아래에서 틀어주고 에어컨은 위에 설치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뜨거운 바람은 위로 올라가고 시원한 바람은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 공기역학 어쩌고.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내 위에서 자는 여성은 삼일동안 더위에 고생하다 민박을 떠났다. 밤새 잠을 거의 청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뒤척이는 움직임에 나의 침대까지 휘청휘청 흔들렸기 때문. 그녀가 들썩-할 때마다 침대는 곧 부서질 것처럼 짜악-거렸다. 설마~ 수년동안 이곳을 스쳐간 한국인이 천명이 넘는다는데, 하필 내가 있는 2024년 9월 8일에 부서지겠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쫘악 거릴 때마다 간이 콩알만큼 쪼그라드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옅은 잠에 들었다가도 알람시계 울리듯 몸이 울려대니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그렇게 이틀은 버텼지만 마지막 난관. 그녀가 야간기차를 타러 새벽 1시 반에 나가야 한단다. 그 시각 오후 10시였고 나는 하루종일 밖에 나가 돌아다니느라 골아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자칫하면 잠든 지 3시간 만에 깨서 새벽을 뜬 눈으로 보낼 일이었다. 그렇다고 침대 흔들지 마세요! 할 수는 없는 일. 큰돈을 들여 여행에 온 만큼 모두의 여행은 소중하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해 온 수면제를 먹어보기로 한 것이다.
상상대로라면 수면제를 먹자마자 곧장 머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누군가 퍽, 친 듯이 잠에 빠질 일이었다. 상상은 무섭다. 1분도 되지 않아 나를 죽음까지 몰아버린다. 이를테면, 기절하면 어쩌지? 몽유병에 걸리면? 수면제에 중독되는 거 아니야? 영영 깨지 못하면 어떡해...
우선 절반만 먹어보기로 했다. 이미 잠들기 직전이었으므로 절반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수면제를 먹자 상상하던 일들이 현실이 될 것만 같아져서 잠이 달아나버렸다. 이러다가도 곧장 잠들겠지 했지만 10분이 흘러도 감각무소식. 갈수록 답답해진 나는 냅다 남은 절반도 입에 털어버렸다. 의사 선생님이 1회분의 양을 주신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따라먹어야지. 그리고 또 10분. 말똥말똥. 아무래도 각성한 것 같았다. 심장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쿵, 쿵, 거렸다. 그리고,
잠들었다. 1회분 양을 먹고 10분이 지나면 잘 잠드나 보다. 눈을 뜨니 위층에서 뒤척이던 그녀는 떠나 있었고, 시간은 새벽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개운할 수가. 구내염이 두 개 정도 나 있었는데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며칠 동안 못 잔 잠까지 확실히 보충된 듯. 잘츠부르크에 와서는 근교의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 매일 새벽 6시에 나가 밤에 들어오곤 했었다. 오늘은 여독을 풀기 위해 오랜만에 느긋한 아침도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며 긴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기분이 몽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