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가서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 추천해 주세요.‘ 하는 버릇이 제대로 들어버렸다. 그리하여 오늘의 메뉴는 플랫화이트. 어느 카페를 가도 늘 기가 막힌 라테아트를 선물 받는다. 커피의 첫 입은 이게 뭐지 싶었는데 두 번째 모금부터는 거품과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환상의 비율로 입 안을 맴돌았다. 이번에도 성공. 아껴 먹을 거야.
유럽에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유럽의 모습은 단연코 테라스였다. 언제부터 테라스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비가 쏟아지는 날만 아니면 카페에 갈 때마다 날씨가 덥든 춥든 테라스에 꼭 앉아보았다. 더 이상 4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한국에서 테라스에 앉을 날씨는 귀하기도 하고, 지인과 함께 카페에 가면 대부분 쾌적한 실내를 선호했으므로 마음만큼 자주 찾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욱 유럽+테라스 조합에 대한 로망이 생겼던 것 같다.
유럽의 거리를 거닐면 대부분의 가게에는 테라스가 있다. 손님들은 당연하게도 가게 내부보다 테라스를 선호한다. 한여름이라 할지라도 카페 내부에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아서 땡볕이 더 시원하다며 테라스에 앉는 손님이 많다. 게다가 나는 혼자 온 손님. 테라스 앉아도 괜찮아? 하고 물어볼 지인이 없다. 아무 구애도 받지 않고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면 매일 이렇게 살고 싶어 진다. 지금도 역시 그렇고.
담배 냄새가 끊이질 않지만 테라스를 위해서라면 한 달 정도는 간접흡연자가 되기로 했다. 여기 사람들 폐암률이 궁금해졌다. 앉은자리에서 줄담배 세네 개는 기본이다.
평생 담배 냄새를 혐오해 왔다. 길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빨리 그 자리를 뜬다. 그런 내가 지금은 두 시간째 담배 냄새를 맡고 있다. 테라스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또, 앉아있는 두 시간 동안 비가 내렸다 말다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유럽 날씨 이상하다. 비가 우수수 내렸다가 갑자기 해가 쨍쨍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33도였는데 지금은 14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서 반팔티에 재킷을 걸치고 나왔지만 조금 더 따뜻하게 입었어야 했나 보다. 슬리퍼를 신은 발가락이 얼음처럼 굳어간다. 그래도, 테라스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분명 비가 쏟아지는데 절반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나도 우산을 안 써보고 싶어서 가방에 우산이 있었으면서도 비를 홀딱 맞아보았다. 뭔가 멋스러운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