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숭생숭했다. 하나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잠을 네 시간밖에 못 잤고, 비가 추적거리고 있었으며,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입을 겉옷이 없어 나가기 막막했다. 또,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카카오톡이 오고 있었다. 이제 대략 10일 정도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직장인이 되어, 다시 은근히 불행하게 살게 되려나. 나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머릿속은 복잡해도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몸이 지치면 잡생각도 줄어들겠지. 움직이자.
잘츠부르크 카드를 발급받아서 하루동안 여러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으로는 호엔잘츠부르크성.
걸어서 30분이면 올라가는 곳인데 푸니쿨라를 타면 1분 만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이 예뻐 보여서 다음에는 산책 겸 걸어 올라와야겠다고 생각.
성 내부는 박물관으로 꾸며두었는데, 가장 먼저 칼이 보였다. 이걸로 목숨을 건 싸움을 했겠지. 칼은 빵칼보다도 둔탁해 보였다. 이걸로 사람을 찔러 죽일 수는 있었으려나. 하지만 전쟁의 역사를 교과서로 접해 온 나는 그 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났다는 걸 알고 있다.
다음으로 보이는 투구와 갑옷. 무자비해 보이는 투구 안에 겁먹은 청년의 모습이 그려졌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전 세계 사람들. 한 사람의 인생이 전쟁으로 끊겼다. 수만 명이 죽었다고 한 들 한 명의 목숨이 가벼워질 수는 없다. 떠난 사람의 남은 일생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예상보다 전시해 둔 작품이 많아서 시간을 많이 썼다. 그래서 다음 장소인 헬브룬 궁전에 도착하기도 전에 머리가 어질, 밀린 잠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지금 숙소는 청소시간. 숙소에 간다고 한 들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계획해 둔 여행을 지속해 보기로 했다.
궁전에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분수가 튀어나오는 이벤트도 있었고, 그 옆에 동물원도 있었다.
동물원에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표범을 보았다. 표범의 살가죽이 너무나 호피무늬여서 징그러웠다. 호피무늬 옷을 입기 위해 저 살 가죽을 뜯어내었을 인간의 허영심이 한심스러웠다. 얼룩말을 보고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또 처음 보는 코뿔소도. 나름 신기한 구경이었지만 걸을수록 잠이 쏟아져서 뒤에 원숭이와 앵무새 파트는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는 집에 갈까 하다가 아직 청소가 안 끝났을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들어가면 다시는 안 나올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케이블카만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게다가 날씨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산 위의 상황은 달랐다. 지면에는 간헐적으로 햇살이 비추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가니 안개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감정을 표할 체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딱히 실망도, 감흥도 없이 정상에서 먹으려던 사과를 휴게실에서 먹고 곧장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실시간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하루종일 걸어 다녀서 어디에라도 앉고 싶었던 와중에 빈 의자 발견. 옆에는 누가 봐도 한국 어머니가 앉아계셨다. 의자에 앉으면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짧은 인연이 시작되었다.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 돈과 시간을 내고 올라온 케이블 카에서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한국인들.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한국인을 만날 때마다 어디서 왔는지로 물꼬를 틀고 있다. 속으로는 내가 낸 수수께끼의 답을 맞힌다. 프라하? 비엔나? 부다페스트? 정답은 상대방으로부터.
프라하에서 왔어요. 하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아닌 그 앞의 남성이었다. 아들이구나. 옆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뒤를 돌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라하, 나의 다음 행선지. 나는 처음 보는 그들에게 다짜고짜 푸념 아닌 푸념을 해버렸다.
저도 곧 프라하 가는데 일주일이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할 게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가기도 전에 지쳐버린 거 있죠.
그러자 그들, 내가 갈만한 수많은 장소를 추천해 주기 시작한다. 일주일동안 할 거 충분히 많다며 재즈바, 오케스트라, 발레, 양조장, 심지어 투어 사이트도 몇 가지나 알려주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부르착을 알려주었는데, 와인용 포도를 착즙해 만든 알코올음료라고 했다. 그 맛은 샴페인 같기도 포도주스 같기도 하다며. 오직 9월의 체코에서만 먹을 수 있으니 꼭 사 먹어보라고. 그들의 따뜻한 도움에 다시금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페트병을 꺼내셨다. 부르착이었다. 용량이 2L나 되는데 사고 맘에 안 들면 큰일이라며, 마셔보고 맛있으면 그때 사보라고 건네신 거였다. 나는 곧바로 한 입을 꼴깍.
사야겠어. 한 모금 먹자마자 결심했다. 첫 입은 새콤하더니 곧 포도향으로 달콤해지다가 끝에 남는 깔끔씁쓸한 바디감까지. 태어나 먹어본 와인 중 1등이었다. 이거 꼭 사야겠는데요? 하니까 어머니가 손을 훠이-훠이-하시며 말했다.
그럼 사기 전까지는 이거 마셔요. 우리는 많이 먹었어.
먼 나라에서 처음 만난 여자애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고 이렇게 베풀어 주시는 걸까.
사는 방법도 번거롭다는데, 맨 처음에는 탄산이 너무 강해서 이틀 동안은 매시간마다 공기를 빼며 후숙 시켜야 한다는데, 그 정성이 가득 들어간 와인을 내게 홀라당 선물해 주셨다. 미지근하니까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원하게 먹으라고 했다. 미지근한 와인이 속에서 울컥거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