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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Sep 18. 2024

오랫동안 뜨거울 김치찌개

요즘 오스트리아 날씨 왜 이러는 거야. 아침 일찍부터 산악열차를 타러 떠나려 했지만 오늘도 비가 오는 바람에 침대에 누워 뭘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구미가 당기는 장소가 마땅치 않군. 그러던 중, 이른 아침을 먹던 룸메이트 언니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는 지금 부엌에 사장님이 와있다고 했다. 별 볼 것 없는 잘츠부르크에 일주일이나 숙박하는 손님이 궁금하다며 잠깐 불러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마침 나도 사장님이 궁금했던 터라 언니를 따라 나갔다. 사장님은 장기투숙에 대한 감사로 0층의 한식당에서(유럽의 0층은 한국의 1층과 같다.) 김치찌개를 공짜로 먹게 해 주겠다고 하셨다.


김치찌개애애 김치찌개애애 노래를 불렀는데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있나? 그리하여 점심도 먹지 않은 채로 시내 구경을 끝낸 후 다섯 시가 되자마자 한식당으로 향했다. 한 공기 다 먹을 거야. 국물까지 다 먹을 거야. 불끈불끈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김치찌개가 나왔는데, 사실 처음에 한 번 컴플레인을 했다. 공짜로 먹는 주제에 조용히 먹고 가면 될 것을 굳이 굳이 컴플레인을 했다. 웬만하면 그냥 먹고 싶긴 했는데 김치찌개 안의 버섯과 두부가 앗차거- 할 정도로 차가워서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만 더 뎁혀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조심히 여쭤보았다. 알고 보니 새로운 외국인 직원이 뚝배기 문화를 몰라서 불로 한 번 지지자마자 내어준 것이었다. 그럴 수 있지. 다시 나온 김치찌개는 혓바닥이 다 데일만큼 팔팔 끓고 있었다. 이거거든. 이게 뚝배기거든. 김치찌개는 매우 짜고 뜨거웠기 때문에 차가운 물을 조금 부었다. 1석 2조. 그리고는 국물을 무한정 떠먹었다. 피 속에 나트륨이 콸콸콸. 밥에 김치찌개를 말아먹듯이 비벼먹고 있는 와중에 사장님이 1층에서 내려오셨다. 아침에 자고 저녁즈음에 일어나시는 듯했다. 그는 내게 잠깐 테라스에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이 담배는 몸에 좋단다. 그럴 수 있나?

그날 우리는 6시간 넘게 뚝배기보다 뜨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님은 어릴 적부터 새로운 장소을 마주했을 때 유달리 강한 행복을 느끼는 아이였다고 했다. 철없을 국민학생 때는 부모님 지갑에서 돈을 훔쳐서 가출해서는 혼자 어린이대공원에 다녀오기도 했던, 낯선 공간에서 겁도 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 그런 그는 시각과 청각을 통제함으로써 뇌를 마비시키려고 하는 영화나 유튜브를 끔찍이도 싫어한다고 했다. 단, 책은 하루에 8시간씩 읽는다고. 왜?

새로움과 함께라면 당연하게 기쁨을 느끼던 아이는 나이가 들고 돈이 많아질수록(한인민박과 한식당이 잘츠부르크 1등 인기 장소이다. 유럽에 자가 두채 보유. 게다가 싱글. 고로 엄청 부자다.) 그 감정이 희석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찾아낸 돌파구가 독서였다. 책을 읽으면 그 안의 인물에 동화되어 강렬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때 묻은 뇌를 초기화시킬 수 있었다.

아주 가끔, 하늘 아래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젖히며 인생 존나 아름답네 씨발, 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무지개를 보았다

이렇게나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 스무 살 때는 영창에서 몇 주 동안을 움직이지 못하고 두들겨 맞으며 지냈나고 했다. 그의 나이 59세. 민주화 시대였다.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작은 방에 가두어진 그에게는 오직 성경 한 권만이 허용되었다. 두드려 맞는 시간 외에, 그러니까 남들이 두들겨 맞는 동안에 읽으라는 것이었다. 하루에 화장실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단 1분. 그때 볼일을 보지 못하면 역시나 두들겨 맞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짐승처럼 살았다.

그러다가 딱 하루, 바깥에서 주어진 5분의 자유시간. 그때 그는 생각했다. ‘자유롭고 싶어.‘

그렇다고 해서 그는 절대 합의하지 않았다. 서명 한 번이면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신의를 지켰다. 그렇게 영창에서 풀려난 그에게는 빨간 줄이 그어졌고, 한국에서 8년 동안 취업할 수 없는 전과자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외로 떠나,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한인민박의 주인이 되었다. 시행착오라고 함은 하루 숙박비가 3천 원인 동남아 숙소에서 남들이 쓰다 버린 샴푸로 머리를 감고, 남들이 먹다 남긴 맥주를 마시며 살았던 것. 그 와중에도 그는 여전히 정직했다. 절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거짓된 삶을 산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감사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했을 테니까. 격변의 시기와 혼돈의 환경 속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신의를 어길 일이 없었을 뿐이지, 나였다면? 자신이 없었다. 고맙다는 나의 말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족감이라고 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을 위한 행동이었지, 절대 남을 위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니 고마워할 필요도 없다고. 환갑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40년 전 스무 살 학생의 두려울 정도로 결연한 표정이 비춰졌다.


핑크색 설탕을 들이부은 티라미수. 서비스가 끊이질 않는다.

그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당신은 45살이 되어서야 자유를 찾을 준비가 되었는데 나는 20대임에도 곧 자유로워질 가능성과 재능이 많다고. 가끔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그 사람이 나와 대화를 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나를 대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또, 민박집 손님과 세 시간 넘게(결국은 여섯 시간이 넘었지만) 이야기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떠나고 나면 나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덧붙여주셨다.

타인의 시각으로 나를 마주하면 스스로가 새롭게 느껴진다.

밤이 된 테라스 아래에서 소속감을 느꼈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 일찍 자려고 했기 때문에 옷이 얇았는데, 오들오들 떨면서 여섯 시간을 이야기하다가 가벼운 몸살 기운이 찾아왔지만, 심장은 후끈 불타오르는 밤이었다.

숙소 부엌에서 3차 서비스. 이제 그만 주세요. 물론 다 먹었다.
아침. 햇살이 좋다.
사장님이 주신 아이스크림

그리고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사장님이 후식으로 먹으라고 냉동실에 넣어둔 아이스크림도 먹고, 호엔잘크부르크성에 올라 잘츠부르크를 한눈에 담았을 때, 왈칵하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참 동안 이유를 모르다가, 아, 했다.

나의 뇌가 초기화되어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사했던 것이다. 벅차올랐던 것이다.

호엔잘츠부르크성이 보는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가 보는 호엔잘츠부르크성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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