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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Sep 19. 2024

마냥 행복할 수는 없어

내가 봐도 나는 참 오락가락 한다.


평소와는 다른 우울감이 찾아왔다. 보통은 신체가 피곤하다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사건이 있었다거나, 생리전증후군이라거나, 어쨌든간에 티끌만큼의 이유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게 아니었다.

왜 이러지. 왜 이러는거야 나. 어제까지만 해도 인생이 아름답다며 눈물을 훔치지 않았던가. 하루 만에 기분이 하늘과 땅을 넘나들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으니 자꾸만 머릿속으로 우울 후보를 나열해대었다.

1. 새벽부터 숙소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깨서 불쾌했나?

2. 하루종일 비가 왔고, 앞으로 남은 여행 기간 내내 비가 올 예정이라서?

3. 잘츠부르크에서 프라하까지 6시간 동안 지하철로 이동하다가 지쳤나?

4. 숙소 위치를 잘 못 찾아서 한 시간 동안 캐리어를 끌고 돌길을 헤매어서?

5.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 회사에 가야 하기 때문에?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을까 재고 따지는 것도 힘이 필요한 일이었다. 포기할래. 그냥 우울한가 봐. 침대 속에 누워서 멍하니 있다가,


전화할 사람 없나,

한국은 지금 새벽이구나.

수면제 먹고 푹 잘까,

그럼 새벽 두 시에 깰 텐데.


집에 가고 싶나? 그렇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솔직히 둘 다 싫었다. 그러니까 집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 모두, 다 싫었다.


이런 하루라도 소중하니까 일기를 써서 기억해두고 싶다가도, 막막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슨 글을 써야 하지. 정리된 생각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무슨, 뭘 어떻게.


태어나 처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여행에서야 처음 느끼는 우울감이지만 원인 미상의 우울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안다. 마냥 행복할 수는 없잖아. 아무리 여행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매번 갑갑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유라도 알면 나를 달랠 수 있을 텐데. 응애! 하고 울음을 터트린 갓난아기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초보엄마처럼 당황하고 있다.

초보 엄마 하니까 엄마가 보고 싶어 진다. 전화라도 하고 싶다. 엄마는 나보다 나를 더 잘 달래주니까. 우리 엄마는 초보가 아니다.

엄마아아 나 왜 이래. 어떻게 해야 돼?

답이 없을 엄마에게 마음속으로 물어보다가 불쑥 두려워졌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우리 엄마는 지금쯤 행복한 꿈나라일 텐데, 먼 타지에 있는 딸은 갑자기 엄마가 없어지는 상상을 해버린 것이다. 가끔은 엄마가 없을 나중의 내가 너무나 불쌍하다. 내가 할머니가 되고 엄마가 더 할머니가 되고, 엄마가 수명을 다해서 돌아가시면, 그때는 나는 엄마에게 잘 가라고 할 수 있을까.


으아아. 더 울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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