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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Feb 21. 2023

짝퉁 명품백 살 뻔한 이야기

명품백에 대한 반감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사치품 아닌가?

명품 마크가 보이면 내 옷의 값어치가 딱 거기까지라는 거잖아.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신비주의로 마크가 안 보이는 옷을 입겠어.’


야무진 가치관을 가진 저는 어이없게도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던 중 어느 여성이 맨 가방에 꽂혀버렸습니다.


샤넬이었어요. 샤아-넬


얼마나 하는지 찾아보니까 무려 600만 원. 올해의 신상 백 이더랍니다. 한 번도 그렇게 비싼 걸 사고 싶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살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렇다고 통장 잔고에 600만 원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곧 취업하는데 명품백 하나 사도 되지 않을까? 나에게 주는 선물이잖아! 고생한 나를 위해 한턱 쏠까? 사고는 싶은데... 못 사겠어 어떡해...’


그러다가 문득,


이거 짝퉁도 파나?


라는 생각이 쓱 스쳤습니다. 정말 쓱 지나가던 생각이었어요. 그 생각을 그냥 보내버렸어야 했을까요. 하지만 곧 제 머릿속은 짝퉁백으로 가득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건 불법이잖아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짝퉁과 정품을 비교하는 영상을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영상 속 유튜버가 내린 결론은 제게 요상한 확신을 줬습니다.

“여러분~ 짝퉁 퀄리티가 왜 이렇게 좋은 거죠? 거의 같은 제품 수준이네요~ 하지만 절대 사시면 안 됩니다! *좋댓구알^^”

잠시 멈칫한 후 바로 인터넷에 짝퉁 매장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정말 똑같아 보이는데 60만 원인 거예요. 무슨 짝퉁이 수 십만 원 인가 싶다가도 원래 600만 원이니까 10%밖에 안 하잖아요.

아, 이거는 안 사면 손해네.


아무래도 제가 뭔가에 단단히 씐 것 같지요?


홀린 듯이 주말 내내 짝퉁 매장을 뒤졌습니다. 인기 있는 가방은 한 제품에 리뷰가 1,000개 가까이 있더라고요.

천 명이 이걸 샀다라... 그럼 제가 1001번째로 사도 아무도 모르겠지요.

결국 마음을 정했습니다. 한 번 사 보기로 했어요.


마음이 뭔가 쿵쿵,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했습니다. 이내 집 안이 너무 갑갑해졌어요. 제가 좋아하는 집 앞 테라스 카페로 나갔습니다. 카페에서도 제 관심은 오로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가방뿐.


그런데 잠깐, 갑자기 사람들의 가방이 다 짝퉁으로 보이더라니까요? 정말 다 가짜 같았어요. 뭔가 광이 덜 나는 것 같고,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마감 처리가 잘 안 되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제 또래의 여성이 가방을 들고 있으면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겠지. 하며 단정 지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


그리고 제 안의 이성이 돌아왔습니다.

너 뭐 하려고 한 거야?

그때 알았습니다. 이미 이 세상을 알게 된 이상, 저는 명품을 살 수 없습니다. 아직 명품 세상에 입문도 하지 못했는데! 명품을 사도 짝퉁 같아 보여서 억울할 것 같고, 짝퉁을 사면 진짜 제품과 달라 보여서 부끄러울 것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저는 왜 그 가방이 짝퉁으로라도 사고 싶었을까요.

예뻐서? 네 예뻤습니다. 그런데 비슷하게 생긴 저렴한 브랜드 제품은 사고 싶지 않았어요. 유튜브 속 여성이 샤넬백을 맨 그 모습 자체가 예뻤거든요. 그래서 그 제품이 아니면 안 되었습니다.

유튜브 속 그 여성이 우월해 보였던 걸까요?

어쩌면, 제게 명품백은 결핍의 화려한 실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님 말고!


*좋댓구알: ‘좋아요-댓글-구독-알림설정‘ 의 줄임말로 유튜버 사이의 유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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