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입맛이 세 번 바뀐다는데

저는 이미 두 번 바뀌었으니 한 번의 입맛 체인지 기회가 남아있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입맛이 바뀐 두 번의 경험을 이야기해드리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입맛이 바뀌었다고 느낀 건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녹차빙수를 먹었을 때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들은 저를 포함해서 세명이었습니다.

저는 '대한'이었고요, 생일 순으로 민국이, 만세 였어요.

제가 대한~ 하면 민국이가 밍끅~, 마지막으로 만세가 망떼! 하며 아저씨마냥 껄껄 웃곤 했습니다.

저희는 놀기도 잘 놀았지만, 함께 공부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게요. 저는 모범생이 확실합니다.

함께 토론대회를 나가서 2년 연속 수상을 했습니다. 저희는 특히 토론대회에서 쿵짝이 잘 맞았거든요. 제가 "귀하가 정의한 ~은 무엇입니까?" 하면 밍끅이가 "저희가 정의한 ~는..." 하고, 망떼가 "방금 ~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처음에 정의하신 개념에 따르면~" 

아, 다시 한번 피가 끓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때 좀 더 열정을 줄이고 토론에 임할걸 싶기도 하고요.

눈에서 불이 팔팔 끓는 세 학생을 보는 상대편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했죠?

아 아무튼, 토론대회 예선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날이었습니다. 

김밥천국에서 돈가스+김밥+쫄면 세트를 나눠먹었는데 왠지 양이 부족한 거예요. 

저희는 돌도 씹어먹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마침 유행하기 시작한 눈꽃빙수를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제시한 조건은 별거 없었습니다. 녹차만 아니면 돼!

근데 이 말이 친구들이 녹차를 먹고 싶었던 욕구를 자극한 것이에요.

애들이 녹차가 아니면 눈꽃빙수를 먹는 의미가 없다며, 녹차는 무조건 맛있는 음식이라면서 먹어보자는 거예요.

아, 나 왕따였나?

아니 생각해 보니까 요놈들 너무하네. 

녹차만 아니면 된다고 했는데 기어코 나를 설득해서 녹차빙수를 먹다니.

설득을 이렇게 잘하니 토론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그래서 녹차빙수를 먹게 되었는데, 

그런데, 

세상에 너무 맛있는 거예요. 

아놔.

그래서 제가 다 먹었습니다. 녹차빙수를 제일 많이 먹은 게 저일 거예요. 그날 이후로 녹차에 빠져서 한동안 녹차라테, 녹차프라푸치노, 녹차아이스크림 등등 녹차덕후로 살아갔습니다.

원래 녹차가 쓰고 떫었거든요? 그 맛이 그대로인데 제가 그 맛을 맛있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다른 맛이 느껴진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씁쓸하고 떫은, 제가 드디어 어른의 맛에 눈을 뜬 것이지요.

두 번째로 입맛이 바뀌었다고 느낀 건 엊그저께 크림파스타를 먹었을 때입니다.

사실 크림파스타는 어릴 적에 안 먹었긴 했는데 그건 제가 우유를 잘 못 먹어서 도전을 못했던 것이고,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크림파스타를 좋아하는 인간이 되었어요.

학교 근처 파스타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면 점심으로 로제파스타 아니면 크림파스타를 먹었어요. 

꾸덕하면서 부드러운, 느끼한데 고소한 참맛!

분명 작년까지는 크림파스타를 되게 좋아했었단 말이죠.

그런데 제가 엊그저께 트러플크림파스타를 먹었거든요?

두 입 먹었을 때였나. 음, 문득 못 먹겠더라고요. 

처음에는 오해라고 생각했어요.

잘 못 먹겠다고 착각하는 거다, 아까 지하철에서 멀미를 좀 해서 컨디션이 안 좋은 거다, 하면서요.

그런데 한 절반 먹었을 때였나... 살짝 우웁 하게 되더라고요. (입덧 아님. 미혼이에요)

그래서 결국 왕창 남겨버린 거예요!

꾸덕하면서 부드러운, 느끼한데 고소한 그 맛을 못 먹겠더라고요.

똑같은 맛으로 느껴지는데도 그 맛을 맛없다고 생각하게 되덥디다.

제 마음속은 절망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둔 크림파스타가 한 개 더 남아있거든요. 

저거 어떻게 먹지...

크림파스타를 안크림파스타인 것처럼 먹는 방법 추천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