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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현 Nov 13. 2015

딱 아는 만큼만 보인다

돌파구 노트

(커버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MIT_Media_Lab)


우리에게는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는 능력 밖에는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이나 판단이 얼마나 타당할까? 특히 잘 모르는 내용이나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이없는 생각이나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는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는 능력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지구 밖에는 무한한 우주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자


나는 학부 때부터 로봇 분야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로봇분야는 전기, 전자, 기계, 제어, 소프트웨어, 통신, 센서, 비전, 네트워크, 알고리즘, 최적화, 인공지능  광범위한 분야 기술의 총집합이다. 또한 상품기획, 상품개발, 양산기술 지원 컨설팅 경험을 했고, S전자 사업 영역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기술을 총망라하여 향후 7년간의 기술 지도를 그리는 업무도 진행했다.  당시  주변의 어느 누구보다도 넓고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인  알았다. 오래전에 우주의 존재를 모르고 지구가 전부인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2004년부터 S전자는 MIT 미디어랩의 스폰서로 가입하면서 매년 한 명씩을 상주시킬 수 있었다. 2006년에는 내가 선정이 되어 MIT 에 상주하며 공부와 연구를 하게 되었다. 처음 보스턴에 가서 MIT 미디어랩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스턴에 오기 전에는 MIT라면 정말 수준 높고 대단한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프로젝트들을 보니 대학생 수준이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기술들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해도 훨씬 더 훌륭한 기술들을 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기술인데 다음날 매스컴에 대단한 연구라는 식으로 기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MIT 미디어랩이 세계적으로도 미래기술을 선도하는 조직으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정말 혼란스러웠다.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고 단지 MIT라는 브랜드만 보고 속아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러웠다. 나는 1년간 MIT 미디어랩에서 함께 연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매주 본사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보스턴에 와서 보니 정말 별 것 없더라고 보고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첫 한 달간은 S전자의 먹거리 기술을 발굴하자는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고 혼자서라도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지만, MIT 미디어랩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우물 안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없다


고민 끝에 MIT 미디어랩을 조금 더 이해해 보기로 결심했다. 나도 1년을 함께 보내야만 하는 공생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직이 되었는지를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서 미디어랩의 약 30개가 되는 모든 연구실을 투어해 보기 시작했다. 모든 연구실의 교수들을 만나고 각 연구실의 프로젝트 데모도 요청하여 살펴보았다. 2주간 모든 연구실을 돌아보고 난 후, 갑자기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닫힌 공간의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MIT 미디어랩은 기술을 개발하는 조직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래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조직이었고, 그 새로운 개념을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기존의 기술들을 가지고 와서 간단히 데모 수준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던 것이다. 참고로 MIT 미디어랩은 1985년 설립된 이래로 디지털 세상, 웨어러블 컴퓨팅(wearable computing), 만질 수 있는 인터페이스(tangible interface), 레고의 마인드스톰, 소셜 네트워크, 소셜 로봇, 아이들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스크래치 등 수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제시해왔다.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다는 의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사용한 기술들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개념을 인지할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모든 미디어랩 프로젝트들의 의미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로 뭉뚱그려 보이던 것들이 분해능이 높은 현미경으로 보면서 여러 개로 선명하게 구분되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S전자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여 성공적으로 발굴하였고, 1년 후 본사로 복귀하여 바로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다.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매년 성공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냈고 연구소 내에서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는 미디어랩에서 나의 좁은 시야를 넓히게 되었지만, 본사의 많은 인력들은 여전히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 놓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미디어랩에 본사 인력이 방문을 하였었는데, 그때마다 데모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도 과거의 우물 안에 있던 나와 똑같은 반응만 보였었다.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을 우물 밖으로 꺼내 줄 수도 없고 답답할 노릇이었다. 우리는 딱 아는 만큼 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딱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심리학에서는 잘 알려진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것이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의 학문적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이다.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 (출처: 위키백과)


출처: http://blogs.agu.org/wildwildscience/2015/02/15/reliable-vaccine-treat-dunning-krueger-syndrome/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지식과 경험이 아주 조금 있는 사람의 자신감은 100%이지만, 지식과 경험이 쌓여갈수록 자신감은 낮아진다. 어느 수준 이상의 지식과 경험이 쌓이게 되면 다시 자신감이 상승하기 시작하는데, 최고의 전문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감은 100%에 크게 미치지 못하게 된다. 즉, 리더가 아주 적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생각에 대한 100%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조직 전체를 용감하게 수렁으로 끌고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관련하여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더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고장 난 유선 전화기를 고치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감 100%를 가지고 있다. 결혼 전 박사과정이던 시절에 여자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지금의 장인어른께서 유선 전화기 한 대를 가지고 오셨다. 전화가 되다 안되다 하니 전기전자 박사가 한번 고쳐봐 달라고 하셨다. 순간 난감했지만 어느 영화에서 대만제 부품은 고장 나면 때려야 한다는 대사가 떠올라서, 혼자 방으로 전화기를 가지고 들어가서 유선 전화기를 마구 때려 고친 적이 있다. 역시 박사라는 칭찬을 격하게 받았고, 이때부터 고장 난 유선 전화기를 고치는 일에 대해서는 정말 자신감이 생겼다. 나의 이와 같은 해프닝도 더닝 크루거 효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리더는 매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이때 리더는 딱 아는 만큼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리더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얼마나 깊거나 얕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고 자신감만을 믿는 실수를 한다. 당구 30일 때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말이다. 주위에서 문제점을 제시하더라도 리더의 100% 자신감을 꺾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명한 리더가 되려면 스스로 전문성의 시야를 넓히고, 무지한 자신감은 버리고 오픈 마인드를 갖도록 노력하라


현명한 리더가 되려고 한다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깊이 있게 쌓아 시야를 넓히자. 또한, 무지한 자신감은 누르고 지식과 경험이 많은 부하직원이나 주위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오픈 마인드를 갖추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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