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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현 Dec 21. 2015

존댓말의 효과

돌파구 노트

우리나라의 존댓말은 상대방을 높이고 존중하는 아름다운 언어 습관이다. 반면에 반말은 친밀감을 높여줄 수 있는 언어 표현이다. 언뜻 생각하면 한국어처럼 이상적인 언어 습관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당연하게 사용해온 존댓말과 반말의 언어 습관이 요즘의 회사 조직에서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식과 경험의 깊이가 나이에 비례하던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에서는 우리의 존댓말과 반말이 아주 적절했다. 하지만 정보 사회를 거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필요한 지식/경험의 깊이와 나이와의 상관관계가 크게 약화됐고, 더 이상 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게 되었다. 즉, 나이를 기준으로 존댓말과 반말을 사용하던 우리의 언어문화가 정보 사회 문화와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요즘 시대에는 조직 구성원들과의 긴밀한 양방향 의사소통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직책과 직위, 직급에 의해서 상하 관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의 의사 전달에는 문제가 없지만, 아래에서 위로의 의사 전달은 만만치가 않다. 보통은 상사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부하 직원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즉, 위에서 아래로의 의사 전달은 반말, 아래에서 위로의 의사 전달은 존댓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 그래도 상하 관계 때문에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데, 언어 습관마저 상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형국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할 때 회의 시간이 되면 항상 부러웠다. 정말 상하 관계와는 전혀 상관없이 모두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로 논쟁하곤 했다. 아무리 직책이 높은 사람이 참여해도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더 높은 직책의 사람이 참여할수록 의견 제시는 줄어든다. 

 

그렇다면, 상사와 부하직원 간에 서로 존댓말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경력사원으로 회사를 입사하였기 때문에 직급 대비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함께 일하는 멤버들 중에서 나보다 직급은 낮지만 나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나는 사람들 간에 존댓말과 반말 관계가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지내다가 학교 직속 후배 몇 명이 나의 조직으로 합류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회사에서 복잡한 고민 없이 반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유일하게 직속 후배 몇 명에게만 반말을 사용했었는데 이때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았는데, 직속 후배들에게는 더 쉽게 목소리가 커지고 나의 생각을 더 강요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 것이다. 존댓말에 비해 반말은 상대방을 낮추는 속성이 그 이유였던 것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을 지켜본 바로는 이것은 나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동료나 부하 직원에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면 여러 가지로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존댓말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높이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료나 부하 직원을 더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 동료나 부하 직원이 제시하는 의견에 더욱 경청하게 되고 자존심 따위를 내세우지 않고 잘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중에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임계치가 높아진다. 즉, 감정 변화에 의한 히스테리가 어느 정도 걸러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이나 직책, 직위, 직급에 따른 상하 관계를 약화시켜 보다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도와준다.


- 자연스럽게 동료나 부하 직원을 더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
- 동료나 부하 직원의 의견을 더 경청하고 잘 받아들이게 된다.
- 커뮤니케이션 중에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임계치가 높아진다. 
- 나이, 직책, 직위, 직급에 따른 상하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존댓말과 반말 체계가 정보 사회의 회사 문화에는 잘 맞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모든 구성원이 존댓말로만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오히려 영어와 같은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조직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장점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특히 리더가 솔선수범하여 존댓말을 사용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조직 문화를 바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S전자를 그만두던 마지막 날의 일이다. 입사 때부터 10년 동안 나를 이끌어 주셨던 부사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뵈었다. 부사장님께서는 나의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이야기가 끝나고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다. 보통 때 하던 것처럼 45도 상체를 굽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부사장님께서는 90도 허리를 굽혀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인사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순간 너무나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부사장님의 인생 후배를 아끼는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날 집으로 오면서 내내 부사장님의 마지막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부사장님의 후배를 생각하는 마음을 배워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리더의 언행이 부하 직원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였다.


회사라는 조직은 전략에 따라 때로는 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계층 구조가 중요하고, 때로는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며 답을 찾을 수 있는 평평한 구조가 중요하다. 하지만, 조직이 어떠한 구조를 강조하던지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석에서는 반말을 쓰더라도 업무 시간에는 모든 구성원이 존댓말을 쓰는 것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권유를 해본다. 


우리 앞으로 사석에서는 친하게 반말을 하더라도, 회사 내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써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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