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 노트
모든 문제는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문제와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로 나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딱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문제에 대해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사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모범 답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늘 모범 답안이 있는 문제를 푸는 공부만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들을 접하게 된다. 특히 연구 개발을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인생 문제를 포함하여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를 답이 있는 문제처럼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한 번쯤은 심도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문제만큼 쉬운 문제는 없다
먼저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문제는 우리가 오랜 기간 동안 교육을 통해서 풀어본 경험이 있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답안을 보고 푸는 방법을 이해하면 된다. 회사 차원에서는 이미 나와있는 답안을 이해한다는 것이 바로 다른 회사가 먼저 풀어놓은 답을 밴치마킹하는 것이고, 기술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역설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을 롤모델로 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바로 인생 문제에도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답안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문제만큼 쉬운 문제는 없다.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는 난이도가 매우 높다
두 번째 유형인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는 난이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답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다는 이야기는 풀어도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즉, 실제로 답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답이 있는지의 여부를 아는 것 자체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유형의 문제를 풀어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된다. 한 번 시도해서 실패할 때마다 "이거 정말 답이 있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에 매번 주저하고 헤매게 된다. 시간이 얼마나 더 소요될지 예측도 할 수 없다.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문제를 푸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좋은 예를 살펴보자.
1960년대 후반부터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biped 로봇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로봇 연구자들이 답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처럼 만들면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런 기술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성공해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의문이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박사들이 30년 가까이 연구를 했지만 원하는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참고로, 이때까지 개발된 로봇의 수준은 한 다리를 발발발 떨면서 떼는 데에만 수십 초가 걸리고 다시 앞으로 내딛는 데에만 수십 초가 걸렸다. 정작 한 걸음을 걸었다는데 앞으로 움직인 것이 맞나 싶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걷는다고 주장했지만 걷는 것이 아니었다. 30년이나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근처에도 오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걷는 로봇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1996년 일본의 혼다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P2를 발표했는데 그 수준이 놀라웠다. 로봇의 키도 182cm로 사람과 유사했고 몸무게도 210kg 밖에는 되지 않았다.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카트를 끌거나 볼트를 조이는 일도 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1997년에는 몸무게 130kg에 키 160cm의 여성 체구를 갖는 로봇 P3도 발표했다. 혹자는 사람이 로봇 수트를 입고 시연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학계에서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과연 기술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로봇 P2 데모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d2BUO4HEhvM)
완벽한 두 발 로봇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부터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자연스럽게 걷는 로봇이 우후죽순으로 발표되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발발발 떨며 휘청거리던 로봇들이 어느 날 갑자기 뚜벅뚜벅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혼다가 P2와 P3의 기술 노하우를 공개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처럼 완벽하게 걷는 로봇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아내는데 충분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몇 년만에 대학생들이 두 발 로봇을 만들어 격투기 로봇 대회에 참여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문제를 푸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알 수 있었던 사건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1950년대부터 50년간을 헤매던 인공지능 분야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상용화 수준의 인공지능은 무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2000년 초반에 딥러닝 방식이 아주 우수한 성과를 내면서 갑자기 인공지능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많은 우수한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것도 역시 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였다.
반드시 답이 있는 문제인지를 체크하는 과정을 추가하자
그렇다면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간단히 말하면, 문제 정의를 한 후 바로 답 찾기를 시도하지 말고, 과연 답이 있는 문제인지를 체크하는 단계를 추가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답이 없는 문제라는 결론이 났다면, 맨땅에 헤딩하기로 직접 답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문제 정의를 다시 수정하여 답이 있는 문제로 변경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까지 찾아진 답이 없는 문제를 직접 푸는 것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고 실패할 확률도 높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답이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 자체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답을 찾아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 곳곳의 정보에 대한 접근이 매우 수월해졌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발전과 변화가 빠르고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원하는 정보를 찾는 작업에도 많은 노력이 소요된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외부에서 답을 찾아 협력하여 혁신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R&D와 C&D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최근에는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여 답을 찾는 R&D(research & development) 활동보다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답을 가지고 있는 파트너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C&D(connect & development)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R&D 없이 C&D만을 할 경우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내공이 쌓이지 않는 문제가 생기고, C&D 없이 R&D만을 할 경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어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R&D와 C&D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풀리지 않은 문제 리스트는 평상시에 늘 정리해두고 자주 읽어라
답을 찾지 못한 문제를 잘 푸는 팁이 한 가지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 리스트를 별도로 정리하여 자주 읽는 것이다. 일상에서 또는 다른 일을 하면서 어느 순간 답이 되는 연결 고리가 반짝하고 떠오를 것이다. 파트너를 찾는 C&D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방법이다. 또한, 개인의 인생 문제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평상시에 문제 리스트를 정리하여 가지고 있는 것은 답을 찾을 확률을 크게 높여준다.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노력이 1이라면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노력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세계 최초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고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앞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유형을 정확히 구분하고 문제의 유형에 따라 올바르게 대응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보자. 단, 세계 최초의 일에 도전할 경우에는 후발 주자는 적은 노력으로 금방 따라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후속 전략도 미리 세워 돌파구를 마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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