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직이라 여겼던 간호사 시절. 그립지만 다신 못하겠다.
*4년 전 작성하고 보관만 해두었던 이야기들
먼저 하나씩 들려드릴게요
2015년. 24살 하고도 8월.
대학교를 졸업하고 약간의 웨이팅 기간을 거쳐
대학병원에 입사했다.
신규간호사였지만 신규답지 않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름 빠르게 적응했던 것 같다.
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태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그 태움도 물론 겪었고,
때문에 그렇게 밝았던 나에게 우울증도 왔었다.
업무시간 내 끊임없이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주어진 일을 쳐내야 한다는 것이 신규간호사에겐 버겁기 때문에 사실상 환자 및 보호자에게 마음을 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신규간호사가 살아남는 방법은 다음 선임간호사에게 인계를 줄 때 깔끔하게 주는 것이다.
내 업무시간에 생겼던 일들이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그들이 덜 일할 수 있도록. 예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안 타니까.
하지만 나는 예쁨도 받고 싶었고
환자 및 보호자에게 진심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싶었다.
단순히 제 때 맞춰서 약 주고, 혈압 및 체온을 재고, 식사를 체크하는 그 이상으로.
이 분들이 내 가족이라면? 을 항상 생각했기 때문에.
주어진 업무만 쳐내도 제시간에 일을 못 끝내는 신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욕심을 냈다.
그들의 기분은 어떤지. 불편한 건 없는지. 궁금한 건 없는지. 대화를 했다.
환자 및 보호자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곧 일을 찾아서 만드는 것이다.
결국엔 그들의 불편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티를 해야 하고 처방을 받아야 하고
그들에게 또 액션을 취해줘야 하니까.
비록 그 결과는 오버타임의 연속이었지만
난 그 속에서 꽤나 큰 보람을 느꼈다.
아직 비록 신규간호사이지만
그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해줌으로써,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나를 기다리는 환자 및 보호자들이 늘어간다는 것에서 존재감을 느끼며 만족스러워했다.
환자 및 보호자들과 대화까지 하며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난 손과 다리가 좀 더 빨라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난 빠릿빠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초반에는 인계를 주고 나서 굳어져가는 선임선생님의 표정 및 한숨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고개를 끄덕이고 이후에는 고생했다며 얼른 퇴근하라는 말을 듣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렇게 적응을 하면서, 간호사라는 직업을 택해서
일의 보람도 많이 느끼면서 일했고, 인정도 받으며
천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차가 쌓여갈수록 짊어지는 책임감의 무게,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보수에 불만이 쌓여갔다.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교육에서
다양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을 만났고,
각자 다니는 병원의 조건들을 듣고 나서 깨달았다.
'역시나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적어도 그들 중에서 나보다 악조건의 병원은 없었다.
모두가 그곳에서 빨리 나오라고 했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도화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