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eatment emperils my health. Herein lies the paradox.(나를 위한 치료가 내 건강을 위협한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영화 <Wit>* (2001)
*난소암 말기 여성의 투병기를 다룬 영화로 99년 퓰리처 수상작인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작. 주인공 베어링(엠마 톰슨 분)은 영문학 교수답게 문학적인 언어로 자신이 항암치료 과정에서 겪는 생각과 감정을 독백한다.
대머리가 되는 것 (전편 <대머리> 참조) 외에도 항암치료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이 중 몇 가지만 나열해 본다.
첫 항암주사를 맞고 이틀이 지나서도 갈증이 엄청 나는 것 외에는 특별히 느껴지는 부작용은 없었다.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항암제 대신 식염수를 잘못 주사한 것 같아. 깔깔깔”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삼 일째 되는 날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다.
시침핀 @원단나라
콕콕콕. 손가락 마디에서 작지만 예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뼈 마디를 찌르는 작은 바늘은 이내 큼지막한 바늘 뭉치가 되어 온몸을 돌아다닌다. 콕콕콕 꾹꾹꾹 속절없이 찔리고 또 찔린다. 관절통은 양반이다. 예고 없이 등장하는 찌릿한 통증에 몸은 움찔하지만 참을만하다. 관절통에 익숙해질 때쯤 극심한 근육통이 찾아온다.
황정민@영화 <인질>
오, 살면서 이런 류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조폭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구타장면을 떠올려보시라. 꽁꽁 묶여 흠씬 두들겨 맞은 후에 패대기 쳐진 인질의 상태처럼, 말 한마디 입 밖으로 내뱉는 것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그냥 속절없이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슬프다거나, 짜증 난다거나 하는 부정적 감정조차 사치다. 몸이 아프니 생각 따위도 할 수 없다. 끙끙 앓는 수밖에. 진통제를 먹고 몽롱한 상태로 어느 순간 기절하듯이 잠들었다가 이내 깨어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난생처음 겪는 고통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사라지고 '아, 이래서 사람들이 항암을 포기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근육통이 조금 사그라들면 입 안이 한 꺼풀 벗겨진다. 민트초코마냥 화한 느낌이 입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식도까지 이어진다. 윤기가 흐르는 흰쌀밥을 먹어도 거칠거칠하게 느껴지고, 조금이라도 매운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욕지기에 음식을 넘기긴 커녕 입맛조차 없다. 헛바람 든 복어처럼 배는 항상 더부룩하고, 먹자니 안 먹히고, 안 먹자니 속이 쓰리다. ‘먹어야 산다’를 모토로 인기 드라마와 영화를 제쳐놓고 일부러 요리, 먹방 채널만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도무지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입맛이 없다니, 통탄스럽다.
폭풍설사가 지속된다. 먹은 것도 없는데 쏟아내자니 곤혹스럽다. 탈수증상이 오면 안 되므로 누룽지를 끓이고 보리차를 우려내 억지로 먹고 마시는데, 그대로 또 내 몸은 뱉어낸다. 네 시간마다 설사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난리가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게다가 소변은 또 왜 이렇게 자주 보게 되는지... 자다가 기본으로 세 번은 일어나 화장실에 가야 한다. 그나마 남은 기력도 화장실 가느라 다 소진되는 것 같다.
온몸의 털이 빠진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썹, 속눈썹, 콧구멍, 겨드랑이, 성기,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등 온몸에 난 털이란 털은 몽땅 다 빠져버렸다. 다른 곳이야 남들에게 보여줄 일이 없어 혼자 민망해하고 말면 되지만, 코털이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점성 없는 콧물은 예고 없이 뚝뚝 떨어지고, 코 점막은 헐어 피딱지가 생긴다. 외출할 땐 양쪽 주머니에 코를 틀어막을 휴지를 한가득 챙겨야 한다.
손톱과 발톱도 약해진다. 손톱강화제를 수시로 발라줬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반점이 생기고, 검게 변하고, 가로로 하얀 줄이 생긴다. 하얀 줄은 항암차수가 거듭됨에 따라 마치 나이테처럼 하나씩 늘어간다. 아닌 게 아니라 암환자들은 이 줄을 ‘항암테’라고 부른다. 손톱은 얇아지며 자꾸 부스러지고, 반대로 발톱은 무좀 걸린 사람처럼 하얗게 변하며 점점 두꺼워진다. 빠지지만 않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빠졌다. 그것도 세 개나.
손과 발끝이 저릿저릿하며 감각이 무뎌진다. 미세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아 느낌이 매우 별로다.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데, 손가락 끝에 힘이 안 들어가니 병뚜껑이고 캔 뚜껑이고 열 수가 없다. 억지로 따려다가는 손톱이 부서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수줍게 병을 내민다. 정수기 물통도 거침없이 갈던 내가 작은 뚜껑조차 여닫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자존심 상한다. 뭐,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연약한 척을 할 수 있겠는가.
얼굴은 여드름투성이가 된다. 좁쌀 같은 여드름이 코와 입을 중심으로 얼굴을 뒤덮고, 종기 같은 뾰루지가 온몸 군데군데 자리를 잡는다. 머리카락이 몽땅 빠진 두피에도 여드름이 올라온다. 아픈 것도 억울한데 못생겨지기까지 한다. 아 똑땅해. 여드름은 안팎을 구분하지 않고 계속해서 생겨난다. 콧구멍 안과 귓속에 난 여드름은 짤 수도 없다. 부기가 가라앉는 며칠 동안 멍멍하게 느껴지는 불편함을 이고 가야 한다. 얼굴과 손발을 중심으로 피부색도 칙칙해진다. 평소 쓰던 파운데이션이 너무 밝게 느껴질 정도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은 건강미라도 넘치지, 기미와 다크서클로 뒤덮인 내 얼굴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환자의 모습이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골수기능 저하로 면역력이 떨어지니 한번 난 상처는 쉬이 낫지 않는다. 사흘이면 딱지가 앉고도 남을 시간에 일주일이 지나도 벌건 상처 그대로 쓰라림이 계속된다. 손톱 옆 거스러미를 잘못 떼었다가 고름이 차서 병원엘 다녀오기도 했다. 가까스로 상처가 아물어도 남은 흉터는 한참을 간다.
생리가 멈춘다. 아직 젊은*(?) 나이라 항암이 끝나고 1년 안에 생리가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이대로 폐경**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임신 기간 중 잠시 멈췄던 월경은 정말 편했는데, 항암으로 인한 강제 폐경은 아주 불쾌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질염과 분비물, 식은땀과 홍조 등 전형적인 갱년기 증상에 여러 달을 시달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유방암 진료 환자의 평균 나이는 52.3세라고 한다. (쿠키뉴스, 2023.5.25)
**최근에는 ‘닫을 폐(閉)’를 쓰는 ‘폐경’ 대신 '완성됐다'는 의미의 완경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는 추세지만, 나의 경우는 억지로 닫혔으므로 ‘폐경’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한 것 같다.
이 산의 끝은 어디인가...@한국경제
유방암 환우들은 항암 과정을 ‘산을 오른다’고 표현한다.
6차에 걸친 항암 중 3차를 끝내자 즉, 항암산을 중간 정도 오르자 몸이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부종이 생긴 것이다. 탈모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종 또한 항암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다. 다리는 코끼리처럼 부어오르고, 얼굴은 풍선처럼 빵빵해진다.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도 몸은 물에 폭닥 젖은 솜이불처럼 무겁기만 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겹다. 진료실에서 애써 긍정회로를 돌리며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죠?’라고 하니, 의사는 아주 냉정하게 ‘아뇨. 점차 더 심해질 겁니다.’라고 말한다. 섭섭하지만 진짜 그렇다. 부종은 항암치료가 끝난 후에도 지독하게도 오래간다.
손가락 마디에서부터 벌겋게 시작된 발진은 어느새 손등과 손목까지 슬금슬금 영역을 확대해 간다. 조금 간지럽네?라고 생각했는데 긁으면 아프고, 놔두면 긁고 싶다. 자다가도 어느새 긁적이며 잠에서 깨는 나를 발견한다. 손보다 발이 더 문제다. 발바닥부터 시작된 증상은 발등, 발목, 그리고 어느새 종아리까지 타고 올라온다. 벌겋게 된 피부는 후끈후끈 달아오르는데, 간지럽기도, 아프기도, 따갑기도 하다. 냉찜질을 아무리 해줘도 열감은 계속되고, 군데군데 물집이 잡히는 게 마치 화상을 입은 것 같다. ‘항암화상’으로도 불리는 이유가 다 있다.
안데르센 원작 <빨간 구두> @핀터레스트
수족증후군과 부종이 만나면 아주 ‘환장의 콜라보’가 된다. 다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고 피부는 찢어질 것 같다. 가만히 있지도, 움직이지도, 앉지도, 누워있지도 못한다. 걷는 건 더더욱 고통스럽다.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이 발을 잘라낼 수밖에 없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 다른 부작용은 비교적 의연하게 참아낸 나도 수족증후군이 심해졌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영겁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 고통이 사그라들 때쯤 피부는 벌건 색에서 검붉은 색으로 변하며, 허물이 한 꺼풀 벗겨진다. 이 또한 보고 있기 쉬운 광경은 아니나 차라리 이 상태가 고맙기까지 하다.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독자님들의 안구보호를 위해 블러처리를 엄청 했지만... 그날들의 고통이 아직도 느껴진다
항암 막판에 눈이 침침해졌다. 눈에 뿌연 막을 하나 씌워놓은 것 같다. 글씨뿐만 아니라 사람 얼굴까지 뭉개져 보인다. 컨디션에 따라 어떤 날은 그래도 잘 보였다가, 어떤 날은 아예 안 보이는 수준이다. 초점이 흐려지니 피로감이 심하다. 멍한 느낌을 넘어 멍청한 느낌까지 난다. 눈이 안 보이니 귀도 잘 안 들리는 것 같다. 잘 들리지 않으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는 버릇이 새로 생겼다.
건망증은 덤이다. 원래 나쁜 기억력을 괜히 핑계 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지만, 정말이다. 병원 안내문에도 버젓이 나와있는 항암 부작용 중 하나다. 대화 도중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더라부터 시작해, 머릿속에 떠오른 무언가를 단어로 치환해 입 밖으로 내보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외에도 불면증, 빈혈, 간기능, 변비 등 5,645,436개 정도의 크고 작은 부작용을 더 겪었지만 이만 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