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가 3주 간격으로 진행되는 이유
부-작용(副作用)「명사」 「1」 어떤 일에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
부활(復活)「명사」 「1」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부생.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항암과 항암 사이, 3주라는 기간 동안 항암제는 내 몸 안 구석구석을 헤집어놓는다. 동시에 암세포를 사멸시킨다. 백혈구 수치는 뚝 떨어졌다가 이내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전 편에서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말미암은 심신의 고통을 토하듯 쏟아내었지만(<죽어야 사는 여자> 참조), 그 고통이 항암 기간 동안 동일한 수준으로 매일같이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아마 그러면 죽지 않을까.)
3주, 21일, 삼칠일, 세이레... 힘들고도 신기한, 오묘한 기간이다. 어떤 부작용은 매 회차 비슷한 수준으로, 어떤 부작용은 짧고 굵게 끝나는 경우도 있었고, 항암 초반엔 심했다가 점점 나아졌거나, 반대로 서서히 찾아와 오래가는 부작용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나름의 패턴을 읽게 되었는데…
첫 1주일은 고난의 주간이다.
뼈 마디, 근섬유 줄기마다 느껴지는 깊고 강한 통증부터, 멈추지 않는 설사와 오심으로 심신이 너덜너덜해지는 한 주다. 입맛도 없을뿐더러, 입 안 점막도 한 꺼풀 벗겨져 먹는 행위 자체가 고통스럽다. 주사 후 약 닷새부터는 본격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라 감염에 취약해지며, 신경도 몹시 예민해진다. 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내 비록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아니지만, (심지어 종교도 없다.) 신을 원망하게 되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2주 차는 못생김의 주간이다.
코와 입 주변으로 자잘한 좁쌀 여드름이 올라오기 시작해, 이내 두피, 팔, 다리, 몸통에도 크고 작은 여드름이 생긴다. 여드름은 몸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 콧구멍과 귀 안쪽에도 생기고 또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어떤 건 종기처럼 크기도 크다. 항암 후반기에는 얼굴의 여드름 대신 수족증후군이 찾아온다. 온 손발은 마치 좀비, 또는 시체의 그것들처럼 검붉게 변하는데, 가렵고 따갑고 뜨겁고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훨씬 커서 못생김 따윈 생각할 겨를이 없다.
3주 차는 부활의 주간이다.
안팎으로 힘들었던 몸이 서서히 살아난다. 인체의 신비란. 근육통과 여드름은 사그라들고 입맛도 다소 돌아온다. 머리털이 사라졌다는 걸 빼고는 평상시와 다름이 없는 듯한 기분이다. 며칠 후엔 다음 항암 치료가 기다리고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이 어서 끝나기만을 소망하며 최상, 아니 비로소 정상이 된 컨디션을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패턴을 읽고 나니 부작용에 대처하는 노하우도 늘어났다. 통증의 조짐이 시작되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부작용 약을 복용하는 게 제1의 원칙이다. 부지런히 먹어야 고통이 줄어든다. 평소 비타민을 포함, ‘인위적인’ 약들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편이었는데,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내 몸 안에는 이미 화학 약품이 가득한 걸 뭐.
항암 주사 후 72시간 이내에는 백혈구 수치를 올려주는 ‘뉴라스타’를 주사한다. 자가주사도 어렵지 않다. 뱃살을 한 움큼 잡아 바늘을 찔러 넣으면 된다. 40여 년간 키워왔던(?) 배둘레햄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사흘동안 매일 아침 ‘덱사메카손’ 정을 여덟 알씩 털어 넣는다. 오심과 구토를 방지해 주는 약이다. 이후에도 메슥거림이 계속된다면 ‘맥페란’ 정을 두 알씩 먹으면 된다. 뒤따르는 설사에는 ‘포타겔’ 액과 ‘로페라미드’ 캡슐을 번갈아 복용한다. 속 쓰림에 대비해 위염과 위궤양 치료제 ‘무코스타’ 정도 처방받았다. 구내염 예방 가글액 '탄툼'과 식염수에 섞어 쓰는 가글용 '탄산수소나트륨'도 설명에 빼먹을 수 없지.
근육통에는 ‘마이폴’이다. 일반 진통제로 듣지 않는 통증과 염증을 완화시켜 준다. 마약류로 분류되어 왠지 더 무시무시해 보이는 이 약을 우리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약’이라고 부른다. 캡슐 절반은 짙은 초록색으로, 나머지 반쪽은 쨍한 주황색으로 예쁘게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려움증 완화를 위해 항히스타민제인 ‘페니라민’ 정과 ‘씨잘’ 정을 처방받았다. 수족증후군이 정말 정말 심할 때는 스테로이드제인 ‘소론도’ 정 추가 복용을 권유받았다. 여드름과 발진으로 가득한 피부에는 스테로이드제가 적당히 포함된 ‘토피솔’ 로션을 바른다. 손발 저림에는 ‘리리카’ 캡슐을,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수면제인 ‘스틸녹스’를 챙겨 먹는다.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약에는 또 다른 부작용이 따른다. 역설과 모순은 여기에도 있다. 면역력 회복을 위해 ‘뉴라스타’를 주사하면 관절통이 생기고, 관절통을 없애기 위해 ‘마이폴’을 먹으면 소화불량이나 구토의 가능성이 있다. 말초신경통을 억제하기 위한 ‘리리카’ 정은 신장 기능 이상을 유발할 수 있고, 가려움을 잊게 해주는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한낮에도 잠이 쏟아진다. 토막잠이 괴로워 수면제를 먹으면서는 아침에 영원히 못 일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심지어 가글액에도 발진, 시야혼탁, 위장장애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문이 있다. 아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작용. 약과 함께 두려움도 한 움큼 삼킨다. 그러나 곧 끝날 거라는 기대와 나아질 거란 희망을 더 많이 삼킨다. 와구와구 후루룩 꿀꺽.
일주일 씩, 3주 간격으로 반복되는 이 패턴은 전체 치료기간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심신이 저 아래 바닥까지 가라앉는 항암 기간은 고난의 기간이요, 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이루어지는 기간은 못생김 주간에 비견할 수 있다. 항암은 끝났지만 머리카락은 아직 아직 나지 않아 밋밋한 스킨헤드 스타일을 강제 고수해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술로 가슴에는 한 뼘 정도 되는 칼자국이 생기고, 방사선 치료로 가슴 부위 피부는 거무스름하게 변한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마무리되는 시점, 그러니까 마지막 항암을 마치고 난 후 약 석 달 가까이 지나야 비로소 부활의 조짐이 보인다. 키위 새처럼 보송한 솜털이 살포시 올라오더니 이내 밋밋했던 두피를 까맣게 뒤덮는다. 부종은 서서히 빠져 코끼리 같았던 발목에서 복사뼈가 다시 만져지고, 수술 후 움직이기 힘들었던 왼쪽 팔이 어깨 위로 너끈히 들리기 시작한다. 천세만세 만만세다. 항암 횟수만큼 생겨난 손발톱의 항암테는 한 줄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내 몸 세포들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커버 사진 : 인터넷에서 주은 김성모 만화 짤
https://twitter.com/SSGLanders/status/638684150120218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