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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Mar 30. 2023

유방수난기(乳房受難記)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씩은 있다

가슴「명사」「6」 젖이 있는 가슴 부위. =젖가슴.
유방2(乳房)「명사」 포유류의 가슴 또는 배의 좌우에 쌍을 이루고 있는, 젖을 분비하기 위한 기관. 암컷은 젖샘이나 피하 조직이 발달하여 융기하고, 분만 후 일정한 기간 동안 젖을 분비한다.≒젖
수난2(受難)「명사」 「1」 견디기 힘든 어려운 일을 당함.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나에게 넌, 너에게 난


나에게 가슴이란 그저 여성이기에 발달한 신체부위, 가리기에 급급한 귀찮고 번거로운 애물단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춘기 시절 봉긋하게 가슴이 부풀어 올랐을 때도, 스무 살 꽃 처녀 시절에도 내 가슴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뜀박질을 하면 출렁이던 가슴은 아프기만 했고, 가로질러 매는 가방에 부각되던 가슴은 민망하기만 할 뿐이었다. 예쁜 속옷을 하나 사 줄 생각도, 마사지를 한번 해 줄 생각도 하지 못한 내 가슴.


관심 밖의 내 가슴은 태어난 지 삼십여 년이 되어서야 모유를 만들어내며 비로소 존재의 이유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거침없이 부풀어 올랐던 가슴은 쓰임을 다 하고 나니 다시금 거침없이 쭈그러들었다. 탄력 없이 축 처진 가슴에게 나는 “할매가슴”이라며 조롱하며 “너 때문에 목욕탕도 못 간다”며 모진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이름은 못 지어줄 망정... (드라마 <사내맞선> 중)


평생 관심 밖이었던 내 가슴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남은 평생 온 관심을 독차지하게 됐다.

그저 달린 죄밖에 없던,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면서도 홀대를 당하던 볼품없던 내 가슴이 병이 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만지고 느끼고 깨닫다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22년 8월 초, 샤워를 하다가 왼쪽 가슴에서 단단한 멍울이 만져졌다. 하지만 생리기간과 맞물려 있던 시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월경 중에는 통상 가슴이 무겁고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8월 중순, 생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멍울이 계속 만져졌다. 어쩐지 크기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오른쪽 가슴과 비교해 보니 비슷한 듯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사실 비슷하다고 믿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매년 6월 경 진행하던 건강검진을 뛰어넘었었는데, 겸사겸사 검진 날짜를 잡았다. 가장 빠른 검진 날은 10월 말이었지만 별일이야 있겠냐는 마음으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8월 말, 없어질 줄 알았던 왼쪽 가슴의 멍울은 여전하고, 오른쪽 가슴 상태와도 확연히 다르다. 싸한 느낌에 동네 유방외과를 검색해 가장 가까운 날짜로 예약했다.


9월 5일, “확실히… 뭐가 있네요.” 가슴을 촉진(觸診)하던 의사의 첫마디다. 뒤이은 초음파 검진에서도 정체불명의 덩어리들이 보였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종양에는 양성종양과 악성종양이 있는데, 모양이 별로 안 좋아요. 이렇게 경계선도 불분명하고요. 조직검사를 한번 해보는 편이 좋겠어요. 내일 아침 첫 타임으로 예약 잡아드릴게요." 의사의 조심스러운 설명이다.


9월 6일, 종양이 위치한 왼쪽 가슴에 마취를 하고 조직검사를 받았다. 거대한 조직검사용 총을 종양부위에 찔러 넣어 종양의 일부를 떼어 내는 시술이다. (순간적으로 조직을 떼어낼 때 실제로 총처럼 ‘탕’하는 소리가 난다.) 가슴 두 곳은 참을 만했는데, 겨드랑이 부분은 어마어마한 고통이 수반됐다. 출혈도 꽤 있었고 시퍼러벌겋게 피멍도 들었다.



체감상 이만한 크기의 주사기였다...



조직검사는 외부 기관에 의뢰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려면 2~3일 정도 소요되지만, 추석 연휴 때문에 기다림의 시간이 더 길어졌다. 평소라면 나라님께 감사하며 지냈을 대체공휴일이 이번만큼은 원망스럽다.  의사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모든 정황은 종양이 악성이라 가리키고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좋은데… 암인 듯 암 아닌 암 같은 종양을 몸에 지니고, 꼼짝없이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



9월 13일, 오만가지 생각에 잠 못 이루었던 빨간 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맞이한 평일 저녁, 병원을 다시 찾았다. 연휴 내내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였는지 ‘암이 맞네요’라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종양 두 개는 모두 악성으로, 겨드랑이 쪽 조직은 악성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정확한 건 ‘째봐야’ 안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전이가 없고, 사이즈는 3cm 정도*이니 기수로 치면 2기**다.

*종양이 여러 개 있을 경우 큰 종양을 기준으로 기수를 정한다

**종양 크기가 2~5cm이고 전이가 없거나 심하지 않을 경우 2기다.


출처 : 한국유방건강재단



뒤이어 통상적인 치료방법, 중증환자 등록 및 혜택, 검사 결과 및 의뢰서 발송을 위한 상급병원 선택 필요성 등을 안내받았다. “죽지는 않겠죠 뭐.”라며 담담하게 병원을 나서 그동안엔 감히 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비싼 동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창 물오른 가을 전어와 함께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이제 (한동안) 술을 먹지 못할 테니 '마지막 만찬'의 느낌이다. 



<소울메이트> 때 신동욱은 참 좋았는데...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씩은 있는 거예요.


나는 가슴에 상처가 있는 유방암 환자다.




※ 참고

한국유방건강재단 https://www.kbcf.or.kr/bhi/bhi_info/basic/what_is_breast_cance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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