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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점심시간] 지구당

지난 2주간 사업부에서 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10여 명의 대학생들이 고려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 마지막 이틀은 SK C&C 본사에서 진행된 해커톤에 참여했다. 밤새 머리를 맞대고. 말하고. 싸우고. 졸고. 마시고. 노트북을 두드렸다. 80개의 대학에서 총 15조를 선별했다. 각 조에는 실력 있는 학생들을 한 명씩 배치해뒀다. 순수한 열정을 쏟아낸 쟁쟁한 열 다섯 팀 중 우승을 거머쥔 팀은 누구였을까?




첫 번째 점심시간은 규동 전문점 [지구당(地球當)]이다.


"오늘도 수고가 많아요. 와줘서 고마워요."


머리에 흰 두건을 두르고, 팔뚝에 다채로운 문신을 새긴 건장한 청년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물론 저렇게 말하진 않는다. 위 문장은 지구당의 캐치프레이즈다. 지구당은 '잠시 지친 지구인들이 편히 들를 수 는 우리 동네 밥집'을 표방한다. 지구당 매장은 작다. 늘 북적여서 정신없다. 동네 밥집이라는 표현이 제법 어울린다. 보통 '동네'라는 수식어는 비하의 표현으로 사용되지만 음식과 만나면 친근함을 나타낸다. 밥집은 역시 동네 밥집.


사진 출처=지구당 홈페이지

지구당은 규동 전문점이다. 근데 규동보다 텐동이 더 맛있다. 규동을 검색하면 '소고기덮밥'이라고 나온다. 요즘 같은 시국에 규동보다는 "사장님 여기 소고기덮밥 하나 구~수하게 말아주이소"라고 말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보인다. 규동(牛丼)의 규는 소를 뜻한다. 텐동(天丼)은 튀김을 뜻하는 '덴푸라天ぷら'의 앞 글자를 따왔다. 튀김과 하늘 천(天)의 상관관계를 아신다면 댓글로 설명 부탁드린다.


지구당 텐동이 맛있는 이유는 확실하다. 저렴하기 때문. 보통 텐동 가격은 1만 원을 곧잘 넘는다. 그도 그럴게 텐동은 100% 수작업 요리다. 손으로 만들지 않는 요리가 어딨겠냐마는. 보통 텐동 전문점은 주문이 들어온 후에 튀김을 튀기기 시작한다. 미리 만들어두면 눅눅하니까. 비슷한 원리로는 맘스터치가 있다. 맘스터치의 냅킨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운!" 이라고 적혀있다.


지구당 텐동 한 그릇의 가격은 [6,800원]이다.



메뉴는 단출하다. 네 개가 끝이다. 오전 식사 손님을 대상으로 모닝 카레도 팔긴 한다. 아침부터 먹는 카레는 뭐가 특별할까. 약간 더 부드러운 느낌이라서 모닝 카레라면 차라리 하이라이스를 먹는 게 나을 것 같다.


놀랍게도 지구당은 매일 [메뉴가 바뀐다.]


월, 수, 금은 규동만 판다. 화, 목, 토는 텐동만 판다. 운이 좋게도 오늘은 화요일이었고, 나는 텐동을 먹을 수 있었다. 영업하는 입장에서 요일 별로 메뉴를 나누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정해져 있다면 일단 재료 관리가 편하다. 신선한 재료라는 뜻이다. 불필요하게 버리는 재료도 줄어들겠지. 원가 절감. 만드는 속도도 빨라진다. 회전율 상승. 써놓고 보니 꽤 괜찮아 보인다.


누가 화요일에 규동 소리를 내었는가?

텐동 메뉴는 하나다. 저 작은 그릇에 새우 2개, 연근 2개, 꽈리고추 1개, 단호박 2조각, 반숙 계란 1개가 올라간다. 텐동은 일반과 곱빼기 주문이 가능하며 가격은 동일하다. 일단 곱빼기로 시키는 게 무조건 이득이라는 뜻. 만약 그날 기분이 안 좋다면 텐동+소바 세트를 추천한다. 1만 원이 넘지 않는 가격에 행복한 배부름을 느낄 수 있다. 한 끼에 두 그릇을 시켰다는 약간의 사치스러움은 덤.


텐동은 흰쌀밥 위에 방금 튀긴 튀김을 얹어 먹는 음식이다. 쌀밥에는 비법 간장 소스가 대충대충 뿌려져 있다. 여기서 대충대충이 중요하다. 텐동의 생명은 튀김과 소스다. 특히 소스의 양 조절이 중요하다. 소스가 많으면 밥이 짜지고, 적으면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텐동 전문점은 간장을 군데군데 뿌린다. 골고루 비벼서 간장 맛을 퍼뜨리기보다 튀김에 따라 적절히 떠먹는 편이 맛을 더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튀김옷이 두꺼운 새우를 먹을 땐 간장이 많은 부분을, 알싸한 맛이 강한 꽈리고추를 먹을 땐 맨밥 부분을 먹는 것.


새우살이 굉장히 통통하다. 튀김옷도 두꺼워서 한 입 베어물면 입 안 가득 들어찬다.


텐동은 [조화]를 중요시한다.


튀김. 된장국. 간장 뿌린 밥. 사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 것 없는 음식이다. 하지만 한 번에 먹으면 맛있다. 제 스스로 맛있다기 보단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맛을 더한다. 지구당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손이 덮밥. 찌개. 깍두기. 순으로 왔다 갔다 한다.


식기류 하나에도 신경 쓴다. 텐동이 주는 전반적인 따뜻한 느낌을 해치지 않기 위해 나무 수저를 사용한다. 만약 따뜻한 된장국을 입에 넣었을 때 차가운 쇠맛이 난다면? 미묘한 차이지만,  여러 번 먹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왜 닦기 불편하고 쉽게 부러져도 나무 수저여야만 하는지를. 지구당은 맛있는 텐동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동네 밥집이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점심에 먹기 힘들다.




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 우승팀은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있는 조도, 완벽한 프로덕트를 선보인 조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가장 팀워크가 잘 맞는 조'였다.


우승팀은 학생들이 모두 떠난 대강당에서 조원들과 서로서로 수상의 기쁨을 오래도록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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