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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점심시간] 광화문

“돈가스”     


나는 돈가스라고 적었다. 당신의 눈은 돈가스라는 단어를 보고 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스윙스’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일까. 돈가스라는 하나의 거대한 미식 산업이 일개 한국 래퍼한테 잠식당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사람들은 돈가스라는 단어를 보면 싫든 좋든 스윙스를 떠올린다. 다들 몸서리치고 미간을 찌푸리지만, 웃고 있다.      


음식에 자신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일은 고도의 전략이다. 마마무 화사의 ‘곱창 대란’, 존박의 ‘니냐니뇨 냉면’ 같은 에피소드들은 해당 연예인의 팬덤에 불을 지피곤 했다. 연예인 스스로가 가진 매력과 좋아하는 음식을 향한 애정(혹은 호감)이 더해지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킨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윙스는 굉장히 지적인 캐릭터다. 생각해보면 돈가스를 자주 먹지 않는 사람은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돈가스는 많은 남성들에게 제육덮밥과 투 탑을 이루는 반칙 같은 메뉴다. 나 같은 경우엔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적어도 8번은 먹는다. 만약 돈가스가 없었다면 내 인생의 2할 이상은 저녁 메뉴를 선정하는데 써버렸을지도 모른다.       


간판에 써있는 우동은 먹어본 적이 없다. 다들 돈까스 모밀 세트 먹기 바쁘다.


역삼역 광화문은 [돈가스 맛집]이다.     


서두가 길었다. 역삼역 6번 출구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돈가스 집이 있다. 이름은 ‘광화문 돈가스’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일식을 먹는 게 눈치 보인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선견지명 네이밍 센스로 “이 시국”충을 가뿐히 비웃어준다.      


매장은 좁은 편이다. 주차할 공간도 따로 없다.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저녁에 오면 차들끼리 서로 비켜달라고 빵빵거리는 사운드를 들으며 밥을 먹을 수 있다. 맛집의 어수선함은 마치 백화점의 클래식과도 같다. 없으면 허전하다.     


광화문은 돈가스 집이다. 메뉴를 보면 대부분 돈가스가 기본으로 들어있다. 주문과 동시에 즉시 조리돼 조금 늦게 나오는 편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는 'SET A'다. 돈가스, 냉모밀이라는 틀림없는 조합이다.      



광화문의 돈가스는 [소스]가 생명이다.     


갈색 소스에 곁들여진 노란 강겨자. 광화문 돈가스의 시작과 끝이다. 이 흔한 듯 흔하지 않은 조합은 먹어보지 않고선 그 파괴력을 실감할 수 없다. 돈가스와 함께 나오는 갈색 소스는 보통 ‘브라운소스’라고 불린다. 맞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맛이다.      


강겨자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이 적절한 양으로 섞인다면? 기본에 충실한 브라운소스가 혀를 밀어주는 맛이라면, 살짝 코를 찌는 강겨자는 잡아당기는 맛에 가깝다. 적절한 밀고 당기기 속에 정신을 놓고 있다 보면 접시 위엔 튀김 부스러기만 남게 된다.          



냉모밀은 [걸쭉]하다     


냉모밀이 걸쭉하다니? 무슨 말일까. 보통 SET A로 시키면 작은 그릇에 냉모밀이 나온다. 그 위에는 무즙이 가득 올려 있다. 아린 맛은 전혀 없다. 와사비 맛이 국물을 해치치도 않는다. 대신 김가루 맛이 강하다. 김가루가 국물에 풀어져 나오는 깊은 맛을 먹고 있으면 칼국수와 냉모밀 사이의 어딘가를 맛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광화문의 모밀은 일반적인 쯔유 맛이 아니다. 일단 여기선 ‘메밀국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메밀장의 주재료는 멸치, 가다랑어, 다시마다. (벽면에 쓰여있음.) 온도도 미지근한 쪽에 가깝다. 여타 일식집에서 돈가스와 함께 먹는 냉모밀은 입가심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광화문에서 먹는 메밀국수는 ‘작은 주 메뉴’로 봐야 한다. 돈가스-메밀국수-밥의 조화가 허기진 퇴근길을 가득 들어 채워준다.     



두꺼운 [계란 튀김옷] 속에 들어있는 [후추 폭탄]     


돈가스 집인데 정작 돈가스에 대한 얘기를 안 했다. 그만큼 돈가스 집 광화문에는 돈가스 외에도 이야기할 게 많다는 뜻이다. 광화문에선 주문과 동시에 조리가 시작된다. 잘 들어보면 튀김 소리가 들린다. 점심시간은 예외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돈가스가 튀겨져 있는 상태로 나온다. 점심보다 저녁을 추천하는 이유다. 브런치 닉값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어쩌겠는가. 맛있으면 다 용서된다.     


튀김옷은 두꺼운 편이다.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일단 푹신하다. 계란 맛이 강한 튀김옷이 고기를 과잉보호하고 있다. 느끼함은 없다. 강겨자가 하드 캐리 중이기 때문이다. 두꺼운 튀김옷 아래로는 후추가 잔뜩 뿌려져 있다. 튀김 겉에선 강겨자가, 튀김 속에선 후추가 느끼함을 힘껏 잡아준다. 무심한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면 꽤 섬세한 구석이 있을 때가 있다. 딱 그런 느낌이다. 과장하지 않는 재료들이 한 데 모였을 때 만들어지는 적당한 밸런스란!     


굳이 단점을 뽑자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점심에 가기 힘들다.



브런치 제목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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