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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Oct 31. 2020

여보, 당신도 한때는 로맨티스트였잖아.

  요일 오후, 밥을 먹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산이 가을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가을산 냄새가 그리움처럼 훅 파고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처음 들어섰을 때, 창 너머 보이는 산이 마음을 꽉 붙잡아 여기가 내 집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코 앞에 있는 산인데도 오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오늘이 날이구나 싶었다.


여보, 밥 먹고 산에 다녀오자.



 오랜만에 둘이서 등산을 하고 싶었다. 남편은 강변 둘레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데, 남편의 옷이 너무 얇았다. 감기 걸리니까 좀 두툼한 외투를 챙기는 게 좋겠다 하자 더울 텐데 뭐하러 챙기냐 했다. 더우면 벗으면 되니까 챙기자고 했다. 현관을 나서며 버리려고 두었던 재활용품 쓰레기를 들었다. 남편은 폐기물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이건 그냥 고철이라서 분리수거하면 된다고 했다. 마침 경비원 아저씨께서 계셔서 여쭈었더니 고철로 분리하면 된다고 하셨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서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가을 날씨가 기분 좋지 않냐 했더니 덥다며 아까 챙긴 외투를 벗었다.


 주말부부 2년 차, 남편은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이 없는 5일 동안 친정부모님께서 육아를 도와주셔서 그래도 수월하긴 하지만 퇴근 후에는 온전히 육아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 이번 한 주는 유독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딸아이가 환절기 감기 증세를 보였다. 코로나 시국에 혹시나 열이라도 오르면 안 되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직장에서는 갑자기 몰아친 일거리로 수당 없는 초과 근무를 연이어했다. 일주일 동안 부산에 있는 남편과 통화하며 이번 주는 많이 지친다고 이야기했었다. 힐링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산으로 온 것이 문제였다. 고철이 문제였고 제일 문제는 두툼한 카키색 외투였다. 외투를 한 손에 들고, 산새가 지저귀고 쑥부쟁이가 피어있는 산길에서 우리는 부부싸움을 하고야 말았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산에 오르며 힐링을 하고 싶었는데 우리는 말과 표정으로 가을이 스미는 산을 모독하고 자연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산에서 참 못할 짓이구나 싶어 입을 닫았지만 맘을 몰라줘도 이리 몰라주나 속상했다. 연애할 때는 산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이라도 쫓아 나섰을 남편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내 남편도 한때는 로맨티스트였다. 또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내 남편의 첫사랑이다.




 내가 스물한 살, 남편이 스무 살 일 때 우린 처음 만났다. 우연히 여러 친구, 선배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남편은, 돼지는 평생 하늘을 못 본다는 사실을 몹시 진지하게 슬퍼하며 이야기하던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돼지의 운명을 슬퍼하던 나와 그걸 보고 반한 남편 둘 중 누가 더 이상했던 걸까. 12월 군 입대를 앞두고는 우리 집 앞으로 불쑥 찾아왔다. 당시 남편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던 나는 의아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대뜸 선물 상자를 주고는 잘 지내라고 했다. 선물 상자를 열어보고 더 의아했다. 얼마 전 친구와 길을 걷다 마음에 든다고 말했던 목도리와 장갑이 들어 있었고, 지금은 유물과도 같은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제목은 '마지막 선물'이었다. 나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의문의 비디오테이프를 당장 틀어보았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책상 서랍 두 번째 칸 깊숙이 넣었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이건 지금 함부로 막 봐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미스터리다. 그렇게 '마지막 선물'이라는 이름의 비디오테이프는 내 책상 서랍 안에서 4년을 보냈다.


 군대를 간 남편은 내 생일 때마다 휴가를 나왔고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선물을 주었다. 기다란 선물 상자 뚜껑을 열자 폭신한 솜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나무 교편이 놓여 있었다. 그때 나는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었고, 합격 후 교단에 서게 되면 사용하라는 것이겠거니 했지만 역시나 의아했다. 두 번째 선물인 나무 교편이 든 선물 상자는 책장 맨 꼭대기에 올려 두었다. 처치하기 곤란한 것이 있으면 아무렇게나 올려두는 곳이었다. 나무 교편은 그곳에서 2년의 세월을 보냈다.


 2년 후 나는 임용 고시에 합격했다. 첫 발령을 받고 첫 출근을 앞두고 불현듯 나무 교편이 생각났다. 기다란 선물 상자는 2년 전 모습 그대로 책장 꼭대기에 놓여 있었다. 폭신폭신한 솜 위에서 2년을 자고 일어난 교편을 잘 닦아서 가방에 넣었다. 나무 교편은 나와 교직 생활의 시작을 함께하게 되었고, 학교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붙어 지냈다.


 그럼에도 나는 비디오테이프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 남편은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고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여전히 남편은 내게 관심 밖 아는 후배였다. 남편은 잊힐만하면 연락을 했고 나는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랬었다. 그랬었는데,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남편은 신기하게도 유독 마음이 지치고 힘든 날에 연락을 해왔고, 분명 어리게만 느껴지던 후배였었는데 힘든 마음을 터놓게 되었고 든든하다 느껴졌다. 그렇게 점점 가까워졌고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그때 그 비디오테이프는 본 거죠?



 처음엔 그게 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 게 있었었지! 그날 집으로 돌아가서 책상 서랍 두 번째 칸을 열었다. 비디오테이프는 서랍장 안에서 오래된 가구처럼 놓여 있었고 나는 책상 정리를 할 때마다 비디오테이프를 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거다. 이사를 가야만 옮겨지는 오래된 가구 같은 거였다.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들었지만 볼 수가 없었다. 세월은 빠르게 변했고 사람들은 비디오테이프 대신 CD를 사용했다. 그사이 우리 집 비디오 플레이어도 버려졌고, 이걸 어디서 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교실이 떠올랐다. 교실에서 안 쓰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본 것 같았다. 다음 날,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마지막 선물'이라는 이름의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한때 유행이었던 뽀글 머리를 한 스물한 살의 남편이 앳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러닝 타임 100분. 기획 의도는  자신의 하루 일과 보여주기 라고 했다.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너 참 어떻게 사나 궁금하다고 했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제작된 영상에는 뽀글 머리 남편이 자고 있는 모습부터, 일어나 씻고 강의 들으러 가는 모습, 강의실, 동전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 선배들, 친구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불과 4년 전 영상이었지만 촌스럽게 웃고 있는 남편과 친구들, 선배들을 보니 오래된 사진첩의 빛바랜 사진처럼 반갑고 신기하고 그리웠다. 보는 내내 웃음이 났다. 한 친구는 누나, 욱이 좋은 놈이에요~라고 말했고, 어떤 선배는 지연아, 웬만하면 받아줘라~라고 말했다. 여기서부터 나만 몰랐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물한 살이던 시절 나는 남편의 마음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이상한 선물을 주는 조금 특이하고 순진한 후배가 선배인 나에게 조금 호감이 있구나 싶었다. 나만 몰랐었던, 다시 말해 나 빼고 모두 알고 있었던 이야기를 나는 6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영상이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보라색 니트티를 입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던 스물한 살의 남편은 2년 동안 간직해 두었던 마음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울고 있었다. 군대를 가면 이제 다시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스물한 살 남편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이 비디오테이프에 쏟았었던 것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에야 전해진 마음은 서랍장 안에서 세월을 견디며 더욱 진하게 숙성되고 깊어져 그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는 크기와 온기로 온전히 전해졌다. 따뜻했고 미안했고 눈물이 마구 흘렀다.


 그렇게 우린 만나게 되었다. 복학생 선배가 아니라 4학년 복학생 후배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단언컨대 4년 전에 이 비디오테이프를 돌려 보았더라면 아악 뭐야 라며 꺼버렸을 것이다. 그때의 난 누군가의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비디오테이프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세상에 나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남편은 계획이 있었구나. 남편의 이상한 선물들은 무의식 중에 남편을 기억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남편의 이상한 장기 비밀 프로젝트에 완벽히 말려든 것이다.


  연애 때도 남편의 남다른 행보는 계속되었다. 따뜻함과 순수함과 유머가 남편의 주 무기였다. 남편의 그런 여유가 나를 편안하게 했다. 내 첫 발령지는 청송의 작은 시골 중고등학교였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이 길었고, 아침 7시쯤 집을 나섰는데 지나는 길에 남편의 집이 있었다. 매일 아침 7시 10분쯤이 되면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옥상으로 나와 Be the Reds라 적힌 빨간색 티셔츠를 흔들었다. 멀리서 보면 붉은 깃발처럼 보였다. 매일 아침 출근길 운전을 하면서 펄럭이는 빨간색 티셔츠를 볼 때면, 없던 힘이 났다. 아침을 열어주는 열렬한 환영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고, 오늘을 특별한 하루로 만들어 주었다. 7시 10분의 붉은 깃발을 든 남자는 2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수신호를 보내왔고 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것으로 답했다.


 남편은 그야말로 한 우물만 파는 은근과 끈기의 사나이였다.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6년, 연애부터 결혼까지 3년, 합이 9년. 저 정도 끈기라면 뭘 해도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스무 살부터 시작된 남편의 한 우물 파기는 9년 동안 계속되었고, 남편이 스물아홉 되는 해 11월에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사랑을 위해 20대 청춘을 아낌없이 불태웠다. 우리의 결혼은,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공식을 보란 듯이 깼고 지인들은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목적지인 모암봉까지 아직 반 이상 남아 있었다. 하늘은 높고 풀 냄새 나무 냄새가 싱그러운데, 몸속 세포들이 하나하나 살아나야 할 이 시간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한다 생각하니 더 속이 쓰렸다. 그래, 나도 변했다. 더 이상 하늘을 보지 못하는 돼지의 운명을 애통해하는 여대생이 아니다. 일과 육아로 정신없고, 늘 누워 있는 시간을 그리워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새치인 줄 알았던 흰머리가 꽤나 자라고 있는 내일이면 마흔이 되는 여자다. 서로에게 20대의 풋풋함과 설렘을 기대할 수는 없다. 타오르는 열정과 헌신을 기대하는 건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서로를 더 지긋이 바라보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어른의 성숙함은 필요하다. 큰 문제 앞에서는 어른의 성숙함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 오히려 일상의 사소한 순간이 문제다. 오늘 산을 오르며 사소한 카키색 외투와 사소한 분리수거 때문에 그리고 사소한 말투와 표정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이 없는 전쟁과 같았던 지난 일주일을 쏟아내고 나니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당신이 이럴 줄은 몰랐소 나도 한때는 당신의 첫사랑이었고, 당신도 한때는 끈기 있는 로맨티스트였잖소 서글픈 마음에 뒤 따라오는 남편을 흘끗거리자 남편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참다 참다못해 쏟아내면 남편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래도 계속 흘끗거리자 슬그머니 내 옆으로 온 남편이 말했다.


내가 노래 불러 줄게.



 뭐? 역시나 당신은 나의 상상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존재야. 됐다고 말하려다가 더 이상 가을산을 모독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알겠다고 했다. 마침 적당한 벤치가 있어 앉았다. 남편은 서서 요상한 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슬픈 노래는 듣고 싶지 않아 내 맘속에 잠들어 있는 니가 다시 나를 찾아와 나는 긴긴밤을 잠 못들 것 같아 창밖에 비가 내리면 우두커니 창가에 기대어 앉아 기타를 튕기며 노랠 불렀지 니가 즐겨 듣던 그 노래


 연애할 때 같이 즐겨 듣고 부르던 노래였다. 한 손에 문제의 카키색 외투를 들고 흔들거리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싸우다가 웃으면 지는 거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못 본 척 지나가는 등산객 아저씨의 등도 분명 웃고 있었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순 없고, 손과 얼굴은 변하고, 우리는 좀 더 뻔뻔해지며 늙어가겠지만 가끔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의 첫사랑이었고, 여보, 당신도 한때는 로맨티스트였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선물해주었던 비디오테이프는 CD로 변환되어 보관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우리 딸이 중학생이 되는 해에 공개할 것이라는 것을. 부끄러움은 당신 몫이라는 것을.


스물한 살의 남편이 선물해 주었던 비디오 테이프 - 자세히 보면 상단에 고백이라고 적혀 있는데 케이스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저 문구도 4년이 지난 후에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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