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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Oct 28. 2020

서른둘, 암이 내게로 왔다.


 결혼 후 첫 아이를 기다리며 산전 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갑상선에 결절이 있으니 세침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긴 바늘이 목을 찌르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걱정하지 않았다. 매년 연말 정산을 할 때마다 병원 진료비는 정산할 것이 없었다. 병원은 2년에 한 번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가는 곳이었다. 일주일 후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셨다. 과도하게 정중한 말투와 목소리였다. 남편과 손을 꼭 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0.5센티라고 하셨다. 예의 바른 젊은 의사 선생님께서는 따뜻하고 길게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지만 0.5센티, 그 말만이 내 귓가를 맴돌았다. 0.5 센티면 큰 건가 작은 건가. 희망적인 건가 절망적인 건가. 가늠하기 힘들었다. 첫 아이를 갖겠다고, 엄마가 건강한 몸으로 너를 맞이하겠다고 받은 검사에서 우리는 0.5센티 암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나이 서른둘이었다.


 담담했다. 아픈 게 어떤 건지 몰랐다. 수술 날짜 잡아서 수술하고 나면 그뿐이라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어디 한 군데 고장 나면 고치고 수리해가며 사는 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픈 사람의 마음을 몰랐다. 육체의 아픔에 침전되어본 적이 없었다. 지인들이 어딘가 아플 때마다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나의 위로는 늘 공허했다. 가닿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날 엄마는 감자를 듬뿍 넣어 된장찌개를 끓이셨다. 내게 뭐가 먹고 싶냐 물으실 때마다 감자가 빼곡한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말했었다. 뜨거운 된장찌개를 목구멍으로 삼켰다. 파슬파슬한 감자를 씹었다. 엄마는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연예인들 봐라 다들 건강해져서 티브이에 나오지 않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자가 빼곡한 된장찌개에 밥을 말았다.


 2월의 어느 날이었다. 병실 문이 열릴 때마다 겨울바람 냄새가 났다. 그래도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이 따스하고 눈부시구나 생각했다. 담담하게 누워 수술실로 들어갔다. 시어머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며 우셨다. 나는 시어머님의 손을 꼭 잡고 걱정하지 마시라며 웃었다. 어렴풋이 이제 깨어날 시간이구나 싶어 눈을 떴다. 2시간이면 끝날 거라고 했는데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어두워진 창밖을 보며 내가 너무 많이 자고 일어난건가,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모두의 예상과 달랐다. 0.5센티만큼만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울진 않았다.


  퇴원 후 친정으로 갔다. 팔다리를 쫙 펴고 거실에 누웠다. 길고 느리게 숨을 골랐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나.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건가. 지금 내가 달려가는 길은 옳은 길인가. 나의 최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내가 욕심부리고 있는 건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터져 나오고 한참을 그렇게 며칠을 그렇게 몇 주를 그렇게 지나온 삶을 곱씹다가 후회하다가 스스로가 애석하다가 이내 그 모든 질문들을 차곡차곡 개기 시작했다. 욕심부리며 살아온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로 했다. 욕심을 거름종이 삼아 지금 내가 열심인 것들을 걸러 보았다. 먼저 의미 없이 다니고 있었던 대학원에 자퇴원을 제출했다. 아웅다웅하지 않고 한 걸음 뒤에서 인생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몸이 아팠던 지인들을 진심으로 안아주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고 미안했다. 괜찮다면 나와 같은 누군가의 곁을 지켜주고 싶다 생각했다.


  수술 후 일 년에 한두 번 정기 검진을 받기 시작했다. 진료 대기실엔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인지라 접수 확인을 하고 대기실 의자에 앉을 때까지 어르신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핵의학과 진료실은 지하에 있어 대기실은 늘 적막하고 어둡다. 쉽사리 서로 말을 붙이지 않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 있다.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심장이 콩닥콩닥 긴장 속에 기다린다. 매번 그렇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도 담담했던 마음이었는데, 정기 검진 날만 되면 요동친다. 콩닥콩닥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달래고 또 달래는 시간을 견뎌야한다. 세상 모든 불행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 들어가 검진 결과를 들으며 여쭈었다. 선생님, 제게 왜 암이 생긴 건가요. 선생님께서는 그냥 생긴 겁니다 라고 하셨다.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라 여쭙자, 평소처럼 살면서 자신이 아프다는 생각만 보태지 마세요.라고 말하셨는데 여태껏 나도 모르게 꼭꼭 숨어 있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후 일 년에 한두 번 정기 검진 때마다 의사 선생님 진료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자꾸자꾸 눈물이 나왔다. 나는 진료실 울보 환자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알약을 삼키는 일이다. 갑상선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내게 이 약은 밥보다 중요하다. 작은 알약 하나에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 있다니. 정지선에서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가스레인지 불을 켜 두고 출근을 한다면, 공원 나무 아래 독버섯을 따서 먹는다면, 새끼손톱보다 작은 이 알약을 먹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것도 우리 사는 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평생을 새끼손톱보다 작은 알약에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내 목엔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만한 수술 자국이 생겼다. 지인들은 예쁜 스카프나 목걸이를 선물해 주거나 추천해 주었지만, 나는 이 자국을 일부러 감추거나 가리지 않았다. 선명하게 남겨진 수술 자국을 볼 때마다 주위를 돌보지 않았던,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애통하지 못했던 나의 지난날을 생각한다. 수술 후 나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생각해버리는 쫄보가 되었다. 아픈 것도 억울한데 이리저리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이라니 서럽다. 그런데 이 소심해진 마음이, 아파하는 주변 사람들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꾸만 마음이 쓰이고 안쓰러워 머물게 된다.


 딸에게 뜨거운 물건을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뜨겁다고 여겨질 만한 물건을 만져보게 한 적이 있다. 그러면 아이는 뜨거운 것을 만지는 것은 괴롭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기억한다. 인생은 엉뚱한 순간에 견디고 이겨내는 삶을 가르쳐주었다. 아파 보고 슬퍼해 보고 나서야 그것의 의미와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니 못내 씁쓸하지만, 이 시간을 견디며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움푹 들어간 눈과 패인 볼과 한숨으로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너르고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너무 오래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조금만 더 빨리 편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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