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알 권지연 Sep 11. 2020

홍시를 마중 나간 아이

홍시 마중 - 깊은숨 쉴 수 있는 곳

 6살 무렵까지 나는 시골아이였다.


 면사무소에서 근무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기와집에 너른 마당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때의 풍경을 그리워하며 언젠가 돌아갈 것이라는 회귀 본능에 촌집이나 시골 땅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기와집 너른 마당의 황토색 빛깔과 냄새를 기억한다. 이미 오래된 집이었고, 집보다 마당이 훨씬 더 넓은 집이었다. 종종 소개되는 멋진 전원주택처럼 잘 가꾸어진 잔디가 깔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학교 운동장처럼 밟고 밟아 단단해진 양지바른 흙마당이었다. 여름이면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물놀이를 했던 유년시절 나와 쌍둥이 남동생들의 놀이터였다.

 오래된 집 주변으로는 오래된 나무와 꽃도 많았다. 본채 뒷길의 앵두나무, 마당을 지나 자리 잡고 있던 딸기밭, 봉숭아꽃, 감나무..


  감나무 감나무..


  아침이 밝기도 전, 어른들이 눈을 뜨기도 전에 나는 감나무 아래로 갔다.


 엄마도 처음엔 놀라셨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5살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급히 찾아 나섰는데 발견된 곳이 마당 건너 감나무 아래였다. 아이는 새벽과 아침의 경계선에서 감나무를 올려다보며,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홍시를 마중하기 위해, 모두가 잠들어 있는 틈을 지나 창호지 발린 닫이 문을 열고, 마당을 건너 감나무 아래로 갔다. 아무도 없는 마당 건너, 새벽이 지나는 감나무 밑은 아이와 우리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었다. 어스름 새벽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한 그곳에서 하염없이 홍시를 기다렸다.

 

 그래서 홍시가 떨어졌을까. 홍시도 기다려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홍시는 아이가 알고 있는 세상 가장 달콤한 맛이었겠지. 언젠가 우연히 툭 하고 홍시가 떨어지는 장면을 포착하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도 종종 아이가 사라지는 일이 있었는데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감나무 아래, 아니면 딸기밭. 딸기밭에서는 쪼그리고 앉아 딸기가 익기를 기다렸다. 홍시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긴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기다려도 딸기가 빨갛게 익지 않으니 초록색 딸기도 따 먹었다. 초록색 딸기의 쌔그라운 맛을 나는 지금도 좋아해서 사과도 초록 사과를 좋아하고, 덜 익은 과일도 겁나지 않는다.


 홍시를 마중 나간 아이는 홍시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5살 아이에게 기와집 너른 마당의 정적인 풍경 속에서의 시간은 영원과도 같았고, 느리게 흘러가는 그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딸기가 익기를,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순간에 집중했고 몰두했다.

 


 지금도 새로운 곳으로 발령을 받을 때마다 꼭 하는 일은 '나무와 하늘이 있는 조용한 곳 찾기'이다. 그곳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계절의 냄새를 맡는다. 초록색과 파란색이 있고 살랑, 바람이 불고,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상태로 더할 나위 없다.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고 뒷골에 피가 통하고 미간 주름이 펴진다. 틈만 나면 찾아가는 내 너른 마당은 제대로, 진짜 숨쉬기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나무를, 초록 나뭇잎을, 정지된 듯 흘러가는 구름을, 하늘을 바라본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그 시절 가장 달콤했던 홍시를 떠올리며 나만의 리듬으로 들숨과 날숨의 깊은숨을 쉰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파를 다듬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