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미우새에서 임원희 씨가 애완돌 돌돌이를 키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애완용.. 돌이었다. 반질반질 매끈하게 생긴 그냥 돌이었다. 임원희 씨는 돌돌이라는 이름의 돌에게 말을 걸고 쓰다듬거나, 가만히 있는 돌에게“이리 와.” “조금만 더 힘내!”라며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임원희 씨의 절친 정석용 씨는 이 모습을 짠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바캉스에도 돌돌이를 데려갔다. 돌돌이에게 밀짚모자를 씌우는 모습을 보고 정석용 씨가 이번에는“미쳤냐, 너...?”라고 말했다.
쉰춘기를 보내고 있는 짠희답게 짠함과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긴 했지만, 어쩐지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돌돌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어딘지 항상 메마르고 짠해 보이던 그에게도 이런 생기가 있었다니. 손바닥보다 작은 돌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어찌나 다정해 보이던지, 사랑이 가득했다.
그는 돌돌이라는 존재에게 의미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동시에 돌돌이로부터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있기도 했다. 돌돌이는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이유를 정당화시켜주기도 한다. 주변에서도 가끔 비슷한 분들을 본다. 우리가 은연중에 하찮게 여기던 그 무엇으로부터 행복을 느끼고, 실재하는 자신을 확인한다.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또는 그것을 의미 있게 바라보는,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의 이유를 확인한다.
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각 반에 한 명씩 국어 도우미를 정한다. 특별히 막중한 임무를 맡는 것은 아니고 가끔 수업에 필요한 준비를 돕는 정도이다. 그래도 봉사시간을 부여하기 때문에 뭐라도 나름 역할을 준다. 올해는 일주일에 한 시간씩 시집을 읽을 때마다, 시집이 들어 있는 카트를 옮기는 일을 맡겼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교무실에 와서 시집이 들어있는 카트를 끌어서 교실까지 옮기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맡기고 일주일도 안 되어 후회했다. 이곳이 남중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다. 카트가 교실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그리도 험난할 줄은 몰랐다. 도우미가 카트를 탈탈탈 끌고 가면 여기저기서 달려들어 한 번씩 끌어보고, 들어보고, 건드려보고, 장난을 쳤다. 끌어 오르는 에너지를 발산할 구멍이 생겼다. 멀찍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음, 이건 저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괜한 걸 시켰구나, 카트가 곧 유명을 달리하겠구나 싶었다.
시집을 담은 카트가 고달파 보이기 시작할 때쯤 여기서 그만둬야겠다 싶었다. 각 반에 들어가서 앞으로 시집 운반은 선생님이 하겠다고 했다. 대부분 도우미들은 할 일이 줄어드니 반가워했다. 그런데 1반에서만 탄식이 쏟아졌다. “헐...” 1반 소년들은 유독 안타까워하는 낯빛이었다. 그때 한 소년이
선생님, K는 국어 도우미 하려고 학교 오는데요!!
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었다. 평소 순하고 착한 K에게 장난을 치는구나 생각하며 K를바라보았다.
소년 K의 눈빛을 보고 나는 잠시 당황했다. 열다섯 소년의 실망이 잔뜩 담긴 눈빛, 그 눈빛을 바라본 순간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K야, 정말...?”이라고 묻자
“네... ”
“응...?”
“맞아여. 학교 오는 이유가 없어졌어요.ㅠㅠ”
국어 도우미를 정할 때, 내게는 중요한 선정기준이 있다. 성적도 아니고, 외모도 아니고, 인기도 아니다. 학기초이므로 성실함도 알 수가 없다. 유일한 선정기준은 바로 ‘간절한 눈빛’이다. 서로 하겠다고 손을 들고 달려드는 욕구들 속에서 가장 간절한 눈빛을 발산하는 자를 뽑는다. 그 수가 많을 때에는 가위바위보로 정하는데, 소년 K가 가위바위보에서 이겼을 때, 우리는 짐승의 포효를 들었다. “오와아----------!!!!” 이보다 더 간절할 순 없었다.
K가 국어 과목을 남달리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수업 시간엔 꾸벅꾸벅 졸고, 공부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다. 대체로 의욕 없이 앉아 있다. 그런 K가 국어 도우미로서 카트를 옮기러 교무실에 올 때는 얼굴에 생글생글 생기가 넘쳤다. 교무실 문 앞에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수줍은 모습으로 카트를 가져갔다. 누구보다도 성실했다. K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야 K야, 다른 시간에도 좀 그렇게 해보자.”라며 K를 에둘러 칭찬했다.
K에게 카트를 옮기는 일이란 오늘, 지금, 학교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K가 시집이 든 카트를 무사히 교실로 옮겨야만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무사히 수업을 할 수가 있다. 아이들은 K가 옮겨준 시집을 하나씩 들고 시를 감상한다. 카트를 끌고 복도를 이동하는 순간의 K는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혹은 수줍게 웃으며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이 그 의미였을까.
열다섯 소년에게서 학교에 오는 이유, 존재의 이유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카트를 소년에게로 돌려주어야 했다. K에게만 카트 옮기는 일을 허하겠다고 했다.(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이게 뭐라고 ㅠㅠ) 대신 카트를 더욱 소중하게 대해주기를 당부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짐승의 포효를 들을 수가 있었다.“오예-------!!”
바캉스에서 임원희 씨는 돌돌이를 잃어버렸다. 돌돌이가 물속에 빠진 건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바캉스에 돌돌이를 데려온 자신을 탓하며 계속 서성대는 후회와 상실의 뒷모습이 더욱 짠하게 느껴졌다. 카트 옮기는 일을 그만두라 했을 때의 K의 표정과 같았다. 그러나 몇 달 후, 임원희 씨는 새로이 존재의 의미를 찾은 듯했다. 이번엔 포켓몬빵 띠부띠부씰!
포켓몬빵 띠부띠부씰을 모으기 위해 편의점 빵지순례를 하는 장면에서 다시금 그의 생기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장하고 있지 않던 딱구리씰이 나오자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기뻐했다. 이 땐 시청자도 함께 감격하고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ㅠㅠ 의미 있는 존재들을 만들어 가는 인생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돌돌이와 띠부띠부씰을 정열을 다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