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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코치 신은희 Jul 06. 2021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너무 무리하지 맙시다, 우리

길을 가다 우연히 자신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놓은 듯한 총천연색 무언가를 보고는 차바퀴가 안 닿게 황급하게 돌렸다. 그렇게 지나쳐오면서 문득 한 질문이 떠올랐다.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내가 면접 볼때 받았던 질문이다. 

대학 졸업 즈음, 나는 한창 면접을 보러다녔는데 해외영업직에 관심 있어서 주로 그 쪽으로 지원했었다. (그래놓고 나중에 시작은 기획실이었지만, 여튼 할많하않) 영업직이다보니 단골 면접 질문이 술을 얼마나 잘 마시냐였다. 내 대답이 어땠더라.... 


"저는 아직 숙취를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했었나? ㅎ 

놀란 면접관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라고 묻자 나는 맹랑하게도 "간이 튼튼해서 그런가 봅니다. 해독이 잘 되요~" 이런 대답을 하고 다녔다. 신기해서 붙여준건지 그 대답은 나름 평타를 쳤다.


면접 때 질문을 생각하다보니 학교 개강파티 때 기억도 난다. 

소주를 커다란 대접에다 말아주면서 그걸 꼭 다 마셔야 한다고 하던 선배들이 생각난다. 그걸 안 마시면 내가 학교생활을 못하는것도 아니고, 하여간 그 땐 분위기가 그랬다. 나는 주로 학교 다닐때 주중(술마시는 중)에는 기쁨조(노래불렀다), 파티가 끝나고 난 후에는 기사조(데려다주기)였다. 


보통 대여섯명이 같이 뭉쳐다녔는데 4명은 늘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이 됐고, 나랑 다른 한 친구가 나눠서 데려다주곤 했었다. 술만 마시면 미친듯이 웃던 친구, 술이 취하면 사방에 욕을 하던 친구, 술만 마시면 모든 슬픈 기억을 다 꺼내어내며 오열하던 친구.... 들을 보며 나는 술마시고 내 속을 저렇게 뒤집어 까놓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회사에 가서도 마찬가지여서 홍보마케팅 업무를 하던 나에겐 유독 술자리(접대하는)가 많았는데 한번도 취한 적이 없다. 상사가 미팅 전에 고량주로 낮술을 권하면 화가 나서 끝까지 마시곤 취한 기색도 없이 미팅을 다녀오곤 했었다. 


조직에 속하지 않은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면, 그 땐 뭐가 좋다고 술 잘 마시는게 내 계급장인양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새벽 다섯시까지 마시고 남는게 뭐가 있는가. 


자취를 시작했을 때 알았다. 내가 좋아한건 술이 아니라 술자리의 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분위기였다는 것을. 그것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밥도 그렇지만 누구랑 먹고 마시냐가 맛을 결정하지 않는가. 


여하튼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꼰대가 다 되었는지, 그렇게 밤새 마시고 술을 게워놓는 사람들에게 말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마시면 남는 건 상한 몸 뿐이예요. 지금 만나는 그 사람(직장 관련),
10년 후에도 만나고 있을까요? 그 사람보다 내 몸이 더 중요해요~
너무 무리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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