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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코치 신은희 Jul 24. 2021

석사학위보다 더 소중한 단 한 사람

나를 알아주는 이가 한명만 있어도 살수있다.

어제는 정말 길고 긴 한 주의 여정을 마무리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집밖에서 강의를 마치고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는 기이한 세상) 헛헛한 마음을 부여잡았다. 긴장이 탁 풀려서 몸이 물 먹은 솜마냥 무거워졌다. 여기까지 나왔는데 누군가 만나고 싶다 는 생각과, 코시국인데 만나서 어디 먹으러 가기도 그러니 관두자 는 마음이 다퉜다. 그러다 한 명에게 전화했다.


"언니~ 어디야?"

"응? 나 여기 XX역"

"어머나, 나 여섯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기다려주면 안돼? 나 언니 보고 싶다"


퇴근길 지옥철, 저녁식사도 안했는데 흔쾌히 나를 기다려준다는 그 언니.


언니는 6년전 대학원 다닐때 만난 동기다. 동기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마더 테레사' 일 정도로 사람에 대한 배려심과 챙김이 남달랐던 언니는  세 살 딸을 두고 입학한 나를 누구보다 우쭈쭈해주고 챙겨주었다. 1학년 2학기에 임신해서 출산하고도 휴학없이 2학년 1학기엔 원우회실에 유축하며 악바리처럼 일-육아-학습을 병행하던 내 곁을 아낌없이 지켜주던 언니.


그 당시 우리는 무슨 사귀는 사이처럼 종일 대학원 수업이 끝나면 7시부터 학교 주변 맛집을 다니며, 주로 양꼬치에 칭따오와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으로 고단한 한 주를 자축했었다.


그렇게 가장 치열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같이 보냈던 사이라 그런지 1년만에 만나도 바로 어제 본 사이처럼 반갑고 익숙했다. 집이 동네인데도 자주 못 만나는 사이... 사연은 많지만 각설하고 어젠 집에 함께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언니를 만나자 미주알고주알,  입이 터진 나. 휴대폰 사진을 공유하며 빠르게 지난 일상을 서로 업데이트했다.


아니, 나만 떠들었던 것 같다. 휴대폰 액정을 엎고 나선 "아~ 자랑하니까 좋다" 이런 말을 했던 나. 언니 앞에선 정말 무장해제된다. 이 와중에 또 드는 생각은... '뭐냐~ 넌 그렇게 자랑질하고 또 인정받고 싶었던게냐?' 였다. 어쩔 수 없는 나란 사람.


역에 내려서는... 서로의 방향은 다른데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함께 동네 개천을 따라 걸었다. 덥고 습해도 언니랑 함께라면 숲길이 모두 아름답고 푸르렀다. 갑자기 많이 걸어 놀란 발을 움켜잡고 자리에 앉아 쉬는데 언니가 말했다.


"내가 너라면 정말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거야. 강의하고 나면 힘든데 가서 또 집안일을 쳐내야 하고 남편은 1도 안 도와주고 무뚝뚝하니 네가 얼마나 속이 상할까. 그런데 이렇게 많은걸 다 해내는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 결혼 안 했으면 넌 날라다녔을거 같아."


언니 얘기를 드는데 자꾸 눈이 따가워졌다. 꾹꾹 누르고 나서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는 내 마음에 CCTV를 달아놨어? 참 잘 알고 있네..." 

차마 언니 눈을 쳐다보진 못했다.




또 다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다가 오랜만에 우리 데이뚜 추억의 장소?인 베스킨라빈스에 들어갔다. 시원한 곳에 들어가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무인결제기 앞에서 카드 들고 잠깐 실랑이 하다가 결국 언니가 사주는걸 받아먹기로 한다.


이야기를 하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언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너, 대학원 때랑 눈매가 달라진 거 같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ㅎ 어떻게 달라졌는데?"

"음....뭐랄까..... 대학원 다닐 때 네 눈은 신나서 빛나고 있었는데....지금의 눈매는....움....힘든 걸 꾹꾹 참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야."


언니 말을 듣는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시커먼 속을 들켰다. 너무 많이 불태워서 다 타버려서 새까매진 내 속이 드러났다. 순식간에 눈물이 와장창 올라왔는데...숙련된 사회화 동물답게 황급히 내려보냈다.


"그....렇구나. 씁쓸하네... 부정을 못하겠어서..."




그러다 자연스럽게 우울증 얘기가 나왔다.

"언니, 난 사실 어릴 때부터 참 눈물이 많고 매사 진지, 심각하고 우울한 적이 많았던 애였다?"

"니가? 우울?하다고? 너처럼 밝은 애가?"


그래...흔한 반응이다.

겉으로 보이는 '밝아보이는 나' 는 만들어진 이미지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차곡차곡 두드려 만든 나의 가면이라 잘 안 벗겨진다. 그런데 원래의 나는 그 안에서 정말 답답했다. 괴리감이 너무 심했다. 나는 딴지도 잘 걸고, 자기검열의 1인자인데다 비판적 사고(좋은 말로 크리티컬 씽킹?)가 일상화된 사람이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회사생활을 하려니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납득이 안 가는 일 투성이였는데 설명은 없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하고, 내 생각은 묵살되기 일쑤. 아, 내 아이디어는 다 제것으로 차용해가는 것도 비일비재.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니 나는 그 안에서 또 엄청 '협업 최적화 인재'로 나의 포지셔닝을 셋팅하고 있더라. 살려니까 맞추게 되었다.


회사 얘기만 나오면 격앙되는거 보니 나는 아직도 트라우마가 극복이 안되었나보다. 




단 두어시간이었지만 집에서 24시간 같이 붙어있는 남편보다, 자주 만나는 그 누군가보다 언니와의 이 두시간 대화가 너무너무 알차고 힘이 되었다. 살아갈 힘.


너무너무 힘겨운데,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게 진짜가 될까봐 ...또 나는 상담하는 사람인데 내가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한다는게 어불성설일까봐... 꾹꾹 참아왔었다. 그런데 이 언니 앞에선 다 안심하고 얘기하게 된다.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오죽하면 내가 농담 반, 진담 반 으로 언니한테 맨날 하는 말이 "대학원 가서 얻은 건 언니 밖에 없다" 이다. 진짜 석사 학위보다 이 언니 한 명이 더 값지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인정과 지지를 무한정 보내는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 한 사람과의 만남을 곱씹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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