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열등감의 원천 탐색
다른 사람은 다 잘 풀리는데 나만 안 풀리는 거 같을 때가 있다.
그간 만나온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랬다.
"넌 꼭 잘 될 거야."
"넌 언젠가 대박 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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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언제요????......
어떤 배우가 거절한 영화가 대박 났다는 류의 기사가 매일 머릿속에서 터지는 느낌이랄까? 마치 나는 쪽박 영화 대본만 선택하는 느낌이 반복될 때가 있었다. 조금 더 나은 결정,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어 끝없이 '다시 또 다시'라는 쳇바퀴에 올라탄 적이 있었다. 결과는 당연히 또 쪽박?같은 회한만 남겨주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관에 들어가기 직전이 가장 완벽한 상태’ 라고 누군가 그랬다. 들을 땐 웃어넘겼는데 생각해보니, ‘그럼....완벽해지고 싶으면 지금 죽으면 되겠네??’ 라는 결론을 짓는 나란 사람. 그런 논리로 보니 완벽을 추구한다는 건 얼마나 나를 갉아먹는 길인가? 내가 새로운 컨텐츠 기획한답시고 밤을 새울 때마다 내 수명은 그만큼 단축된다.
실수하는게 두려워서 실패했다고 비춰지는건 못 견디겠어서 나 자신을 몰아세웠던 수많은 백야의 나날들에 이별을 고한다. 세상에 올바른 결정이란 없다. 그 기준은 내가 세우고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러심리학 기반으로 쓰여진 책「불완전할 용기」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산다는 것은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의미다.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월성 추구다.
불완전한 나는 없다. '완전함'이나 '완벽함' 말고 '나 자체로 온전함'을 선택하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가? 그것 또한 나의 수많은 페르소나 중 하나일 뿐이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나는 자꾸 나무라지 말고 쑥쑥 자라는 나무에게처럼 꾸준히 물을 주자. 나의 자존감이 내 안에서부터 자라나도록. 진정한 자존감이란 자신이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와 내가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할 용기를 뜻한다.
최근에 만난 지인에게 고마운 말을 들었다. 나는 이미 나를 잘 아는 사람이란다. 다만 내 안에 있는 '나'라는 우주가 광활해서 어떤 색으로 색칠해 나갈지 고민하면서 계속 탐험하는 중이라 혼란을 느끼는 것이니 나를 믿는다고 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이다.” 라고 떳떳이 공표할 수 있는 문으로 매일 한발짝 씩 다가간다.
내가 좋아하는 브레네브라운의 말로 마무리한다.
우리의 있는 자체와 깊은 속마음 그리고 취약한 부분도 다 드러내 보여주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면 어떨까요? 아무런 보장이 없다 해도 말이죠...우린 이미 존재 자체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To let ourselves be seen, deeply seen, vulnerably seen, to love with our whole hearts, even though there's no gurantee...We are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