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너네는 아까 신나게 놀았지? 엄마는 아직 못 놀았거든... 엄마도 일하고 신나게 놀아야 잠이 와"
"네에? 그럼 엄마도 장난감 갖고 놀아요?"
"아니~ 엄마 장난감은 그림이야... 엄마는 그림 그리거나 글을 쓰면서 놀아야 좀 풀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는데 뭔가 속이 턱 막혀왔다.
오늘은 연휴 후 첫 업무 날. 예상대로 정신없이 바빴다. 예전 루틴을 찾겠다고 아침 걷기는 40여분이나 해서 좋은 스타트였지만, 연이어 쏟아지는 업무에 숨이 가빠졌다. 게다가 오프라인 강의! 2시간을 서서 중학생들과 프로토타입 만드는 스타트업 강의를 시전하고 나니, 목은 쉬고 다리는 풀렸다.
집에 왔지만 집은 내 휴식공간이 아닌 지 오래. 코로나로 퇴사한 남편이 상주하며 온갖 소음을 내고 있고, 아이들도 속속들이 집에 돌아와서 이것저것 요청해댄다. 밤 11시까지 리퀘스트는 쉴 틈 없이 이어진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사실 외향형 가면을 쓴 극도로 예민한 내향형이었다. 좋게 말해 사회화였지, 진짜 나는 괴로워했었다. 실은 요즘 내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허우적대고 있는 시간대를 거치고 있다.
나는 절실하게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나 혼자 떨어져서 에너지 충전할 시간도 꼭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충전 속도도 느려져서 밖으로 에너지를 쓰고 나면 그 두배 또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십 대도 안된 두 아이를 키우는 내게 그런 시간은 사치다.
그러니 큰아들 남편까지 다 재우고 나면, 비로소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서까지 사수하고 싶은 내 시간이 시작된다.
내가 정말 어렸을 때...
내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을 때...
내가 참 좋아했던 활동을 이 시간에 하는 것이다.
그림, 그것은 하루 동안 시달려서 극도로 예민해진 나의 감정을 말랑말랑하게 마사지해주는 장난감(매개체)인 것이다.
이번 여름은 갯벌만 보거나 비 오는 바다만 봐서 안 보내지나 보다. 추분이 되었는데도 아직 나는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다.
또 바다를 그렸다.
내가 좋아하는 윤슬도 그려 넣고
물결 색깔도 다양하게 번지게 표현했다.
12색이지만 괜찮다.
내 마음을 어루만지기엔 충분한 컬러다.
물이 마르는 걸 기다리며 멍 때리는 시간.
이 시간이 고작 10여분이라도, 내겐 그렇게 위안이 된다.
그림이 내게 이젠 편안히 쉬라 한다.
그럼 나도 이 그림 속 해변에서 형형색색 불가사리들처럼 두 팔 두 다리 다 펼치고 시원한 바다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