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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코치 신은희 Sep 12. 2022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소설 속에서 찾은 인간단상

소설은 내게 유토피아다. 매일 일폭탄 속에서 존버하느라 자기돌봄의 시간을 쉬이 갖기 어려운 요즘 가장 손쉬운 도피처가 소설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소설을 읽으며 여행 기분에 젖거나, 아예 환상적인 SF소설 읽기를 즐겨한다. 단편이나 장편은 크게 관계없다. 분량과 읽는속도는 정비례하지 않으니까.


최근 연달아 읽은 소설들은 넘 인상깊어서 좀 기록해두려 펜을 들었다.


1. 나와 춤을

-온다리쿠 작가의 단편소설집으로, 이 또한 '바다의 파도에 몸을 실어 서핑'이란 책을 읽다 나온 문장이 맘에 들어 빌려본 책이다. 모든 소설의 끝이 참 기이하고 신비한 여운을 남겼다. 특히 '소녀계 만다라'에 나오는 세계는 참 인상깊었다.


"오늘도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천천히, 조금씩,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이 곳에서는 건물이나 자동차 따위가 계속 어딘가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활력넘치는 세상이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삶의 기준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이는거 아닐까? 현실 또한 움직이는 세상 속에 끝없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2. 우주의 일곱조각

- 은모든 작가의 '오프닝은 건너뛰고'도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조합된 제목의 이 책은 고민없이 집어들었다. 단편소설집도 아니고 장편소설집도 아니고, 연작소설집 이란 글도 흥미를 끌었다.


역시나 실망스럽지 않은 전개!

이 책은 세 주인공의 평행우주?이론과 같은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읽으면서 마치 작년 내 인생책, '미드나잇라이브러리' 읽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욕망했으나, 이번 생에선 이루지 못할 회한 같은것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는 어쩐지 대리만족되는 기분이었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의 한 문장

“평행 우주가 100개 있다면 저는 그중 80개 세계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99개 세계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겁니다”

를 보고 이 작품집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말을 보고 나니 고개가 더 심하게 주억거려졌다.


나에게 또 다른 평행우주가 있다면,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나온 명대사(적어도 내게는) "아이를 낳는건 자기 얼굴에 문신하는 것과 같은거야" 란 말에 담긴 뼈처럼... 과연 한국에서 결혼하고, 애 둘 낳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현실을 또 선택했을까?...


3. 미엔

- 김아영 작가의 단편SF소설집.

'지구는 더 이상 인간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외계생명체의 침공으로 멸종위기종이 된 인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들의 반란' 등

책 뒤표지에 나온 설명과 얇은 책두께는 내 망설임을 크게 줄여줬다.


p.93.엄마 아빠는 물론 비호는 인간이었기에 자신들만이 선택된 존재들이라는 우월감이나 혐오감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이 대목은 특히 영화 '부산행' 에서 인간들이 살기위해 자행하는 잔인한 면모들을 합리화할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원인간을 복제해 살아가는 외계인이 더 인간다울지, 그런 미엔인을 혐오하는 원인간이 더 인간다운지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4. 휴먼의 근사치

- 2021년 등단한 김나현 작가의 첫 장편소설집.

코로나 이후 20년도 부턴 디스토피아에 대한 소설이 참 많이 쏟아져나온다. 읽을때마다 그들의 창의적인(아니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발상과 탄탄한 서사에 감탄해왔다. 이번 소설은 그 중 최고치다!


'비의70일' 즉, 대재앙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이 소설에선 무너져버린 인간과 AI의 경계가 섬뜩하고도 신비롭게 다가온다.


p.119 "내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야. 인간의 가치는 어리석음을 깨닫고 지혜의 길로 나아가려는 데 있어."

p. 195.  한이소는 자기 자신의 선한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이 소설에선 AI가 '인간의 가치에 기여한다'는 대전제와 각각의 기본값을 부여받은채 각기다른 정체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p.243. 인간은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이 책을 읽고나선 뭔가 거대한 벅차오름이 느껴져서 곧이어 다시 두번 연속 읽어볼 정도였다.


기후환경 위기가 심각한 요즘,

소설처럼 비가 70일 가까이 쏟아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전 처럼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판국에, 전염병까지 자주 도는데...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있음을 지속할 수 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로봇보다 노동의 가치가 더 떨어지는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무용한 즐거움은 곧 행복의 다른 말일까?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인간인가?

나는 인간이겠지?

와 같이 끝없는 질문을 샘솟게 만든 이 소설들을 사랑한다.


사람은 사라있음(살아있음=존재함) 그 자체로

자신의 사라짐 을 예방하는 언어와 가치의 조합 아닐까?


이런 내 깨달음을 이어가기 위해,

또 현생의 지독한 피곤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또 소설을 빌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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