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소설 속에서 찾은 인간단상

by 바람코치 신은희

소설은 내게 유토피아다. 매일 일폭탄 속에서 존버하느라 자기돌봄의 시간을 쉬이 갖기 어려운 요즘 가장 손쉬운 도피처가 소설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소설을 읽으며 여행 기분에 젖거나, 아예 환상적인 SF소설 읽기를 즐겨한다. 단편이나 장편은 크게 관계없다. 분량과 읽는속도는 정비례하지 않으니까.


최근 연달아 읽은 소설들은 넘 인상깊어서 좀 기록해두려 펜을 들었다.


1. 나와 춤을

-온다리쿠 작가의 단편소설집으로, 이 또한 '바다의 파도에 몸을 실어 서핑'이란 책을 읽다 나온 문장이 맘에 들어 빌려본 책이다. 모든 소설의 끝이 참 기이하고 신비한 여운을 남겼다. 특히 '소녀계 만다라'에 나오는 세계는 참 인상깊었다.


"오늘도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천천히, 조금씩,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이 곳에서는 건물이나 자동차 따위가 계속 어딘가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활력넘치는 세상이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삶의 기준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이는거 아닐까? 현실 또한 움직이는 세상 속에 끝없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2. 우주의 일곱조각

- 은모든 작가의 '오프닝은 건너뛰고'도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조합된 제목의 이 책은 고민없이 집어들었다. 단편소설집도 아니고 장편소설집도 아니고, 연작소설집 이란 글도 흥미를 끌었다.


역시나 실망스럽지 않은 전개!

이 책은 세 주인공의 평행우주?이론과 같은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읽으면서 마치 작년 내 인생책, '미드나잇라이브러리' 읽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욕망했으나, 이번 생에선 이루지 못할 회한 같은것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는 어쩐지 대리만족되는 기분이었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의 한 문장

“평행 우주가 100개 있다면 저는 그중 80개 세계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99개 세계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겁니다”

를 보고 이 작품집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말을 보고 나니 고개가 더 심하게 주억거려졌다.


나에게 또 다른 평행우주가 있다면,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나온 명대사(적어도 내게는) "아이를 낳는건 자기 얼굴에 문신하는 것과 같은거야" 란 말에 담긴 뼈처럼... 과연 한국에서 결혼하고, 애 둘 낳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현실을 또 선택했을까?...


3. 미엔

- 김아영 작가의 단편SF소설집.

'지구는 더 이상 인간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외계생명체의 침공으로 멸종위기종이 된 인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들의 반란' 등

책 뒤표지에 나온 설명과 얇은 책두께는 내 망설임을 크게 줄여줬다.


p.93.엄마 아빠는 물론 비호는 인간이었기에 자신들만이 선택된 존재들이라는 우월감이나 혐오감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이 대목은 특히 영화 '부산행' 에서 인간들이 살기위해 자행하는 잔인한 면모들을 합리화할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원인간을 복제해 살아가는 외계인이 더 인간다울지, 그런 미엔인을 혐오하는 원인간이 더 인간다운지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4. 휴먼의 근사치

- 2021년 등단한 김나현 작가의 첫 장편소설집.

코로나 이후 20년도 부턴 디스토피아에 대한 소설이 참 많이 쏟아져나온다. 읽을때마다 그들의 창의적인(아니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발상과 탄탄한 서사에 감탄해왔다. 이번 소설은 그 중 최고치다!


'비의70일' 즉, 대재앙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이 소설에선 무너져버린 인간과 AI의 경계가 섬뜩하고도 신비롭게 다가온다.


p.119 "내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야. 인간의 가치는 어리석음을 깨닫고 지혜의 길로 나아가려는 데 있어."

p. 195. 한이소는 자기 자신의 선한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이 소설에선 AI가 '인간의 가치에 기여한다'는 대전제와 각각의 기본값을 부여받은채 각기다른 정체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p.243. 인간은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이 책을 읽고나선 뭔가 거대한 벅차오름이 느껴져서 곧이어 다시 두번 연속 읽어볼 정도였다.


기후환경 위기가 심각한 요즘,

소설처럼 비가 70일 가까이 쏟아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전 처럼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판국에, 전염병까지 자주 도는데...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있음을 지속할 수 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로봇보다 노동의 가치가 더 떨어지는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무용한 즐거움은 곧 행복의 다른 말일까?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인간인가?

나는 인간이겠지?

와 같이 끝없는 질문을 샘솟게 만든 이 소설들을 사랑한다.


사람은 사라있음(살아있음=존재함) 그 자체로

자신의 사라짐 을 예방하는 언어와 가치의 조합 아닐까?


이런 내 깨달음을 이어가기 위해,

또 현생의 지독한 피곤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또 소설을 빌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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