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엄마의 엄마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새벽 3시 반까지 잠을 못 이루다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 엄마가 엄마를 잃은 슬픔에 마음껏 머무르셨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아침엔 예정된 텔레 코칭을 일단 소화한 후, 서둘러 친정으로 향했다. 사실 오늘은 남동생 생일파티를 위해 모이기로 한 거였다. 어제 전해 들은 느낌으로는... 초상집인데 생.파.를 어찌한다... 난감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가면서 꽃다발을 샀다.
계속 우신다는 엄마가 환한 꽃을 보고 향을 맡으며 기분 전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엄마를 위하고픈 내 맘에 딱 맞는 화사한 꽃다발을 들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친정을 향해 달렸다.
복잡다단한 마음을 가까스로 가다듬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다소 부은 눈이지만 예의 환한 미소를 담은 엄마가 보였다. (휘유~~)
다 같이 즐겁게 밥 먹고 생일케잌 축하도 끝내고 식탁에 여동생과 엄마랑 둘러앉아 할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기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전혀 몰랐었는데 사실 외할머니는 이미 몇 주째 혼수상태셨단다. 미국 친지분이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 속 할머니는 뼈만 앙상한 낯선분이셨다. 게다가 할머니는 이미 두어 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셨단다. 미국에서 내내 집에 모셨던 외삼촌은 어머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숨이 넘어가려 할 때마다 산삼을 먹여서 살려내셨다고 한다.
지난 8월 28일은 외할머니의 약 아흔일곱 번째(정확치 않....ㅠ)생신이셨다. 그 날 새벽, 목사님이시기도 한 외삼촌의 귀에 한 음성이 들렸다.
오늘 밤 11시 어머니를 데리고 가겠다.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오실 것이니 염려 말아라. 이제 그만 어머니를 놓아주어라.
외삼촌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예정대로 어머님의 아흔일곱 번째 생일잔치를 열어 축하를 해드렸다. 그날 밤 11시가 되어도 할머니의 숨이 붙어있자 외삼촌은 '오늘이 아닌가 보다'하고 안도하셨다. 40여분 후 외할머니는 하나님 말씀대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시각 우리 엄마는 한국에서 내 동생과 함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사진을 보시며 그리운 엄마를 추억하고 계셨단다. 한국 시간으로 8월 29일 오후 4시 45분,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외할머니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참 신실한 분이셨다. 오죽하면 TV에서 자살을 기도한 사람이 있다고 뉴스가 나오면, "야야~~ 저 사람은 원래 독실했나 보다 기도도 하고..." 이럴 정도로 '기도' 소리만 잘 들리시는 분이었다.
좋은 데 가셨다고 하니 왠지 더 심장이 벌렁거리고 은혜로운 기분도 들었다. 미국은 코로나 환자가 훨씬 더 많다던데 코로나로 돌아가신 건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다만 코로나 때문에 장례를 당장 치를 수가 없어서 두 달간 냉동실에 보존되셔야 한다고 하니 참 황망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엄마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으며 펑펑 우셨다. 엄마가 우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 신건 처음이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하시는 엄마 모습을 보며 나도 속으로 뜨거운 울음을 삼켰다.
코로나만 아니면, 어떻게든 엄마 비행기표라도 구해서 미국으로 보내드렸을 텐데... 언니, 오빠들이랑 함께 슬픔을 나누면 좀 더 위안이 될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계속 끌어안고 내 어깨를 내어드리고 싶었다. 엄마가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또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삼키지 않길 바랐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보통 나이 든 사람이 먼저 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나도 엄마를 언젠가는 보내드려야겠지. 안 그러고 싶지만 내가 먼저 갈 수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태풍 때문에 최근엔 너무 가슴 아픈 사연이 많이 들려온다. 우리에게 안 일어나리라 장담할 수 없는 일들이다. 많이 두렵고 무기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사람은 살아야겠지.
얼마 전 온라인 녹화 강의에서, 얼굴도 아직 한번 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급 센치해져서 목소리를 높였었다.
"우리가 제각기 다른 존재의 이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저 태어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세상에 있는 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찾으며 부디 코로나 걸리지 말고, 건강히 지내요 우리"
이제 니체의 '아모르파티(Amor fati)'라는 말이 더 다가온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그저 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으로 끌어안으며 나아가라는 뜻이 담긴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