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어떤 달을 바라보셨나요?

세상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에 대하여...

by 바람코치 신은희

이번 추석, 혹시 보름달 보셨나요?


저는 올해 바닷가에서 추석 보름달을 봤습니다. 달 표면의 크레이터까지 보일만큼 정말 휘영청 밝아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보름달이었습니다. 추석에 바닷가에 있어본 것은 결혼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추석을 맞이하기 열흘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코로나로 나라 안팎이 난리니 이번 연휴엔 내려오지 말라는 시어머님 전화였습니다. 내려오지 말라는 시어머님 목소리 속의 섭섭함에 왠지 모르게 찜찜하고, 그래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SNS를 보니 이런 반응들이 많더라고요. "시어머님께서 내려오지 말라는데, 어머님 말씀은 잘 들어야겠죠?" 물음표지만 왠지 설레는 마음이 엿보이는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저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 시댁도 안 내려가는데 이번 추석은 뭐하고 보내지? 일도 짬짬이 할 수 있겠고, 아이들과 송편도 만들어먹고, 늘어지게 누워서 휴식이란 것도 취해볼까?'


재밌는 실랑이는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부터 벌어졌습니다.


먼저 친정 엄마의 전화.

"야야~ 아무리 오지 말라 그래도 명절이니 시댁 내려가 봐야지. 오지 말라 그런다고 정말 안 가면 어떡하니. 유 서방도 불편해하지 않던?"


받고 보니 또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도 매년 매번 당연히 가던 건데... 싶다가도 올해는 특수상황인데? 싶어서 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 애써 맘먹었습니다.


이번엔 남편의 몇 마디.

"기차표 알아보고 있어."

"응? 왜?"

"나라도 갔다 오게."

그래, 그렇게라도 대표 칙사?를 보내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자꾸 바뀌었습니다.

"기차는 대중교통이라 위험하니 다 같이 차로 휴게소는 들르지 말고 한 2박 3일 다녀오자."

"......"


1년에 매주 가는 것도 아니고, 생일 때, 명절 때 어쩌다 한번 간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댁 삼 형제 중 우리만 결혼한지라 손주 보여드려야지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난주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삼일 연속 밤새가며 일했던 저로선, 정말 휴식이 절실했습니다. 시댁이 싫다기 보단 가면 여자만 일하는 분위기의 시골이라 싫었습니다. 작년 추석 연휴엔 막혀서 평소 3시간이면 갈걸 6~7시간 걸려 갔던 장거리 고생길 기억도 소환됐지요.


그간 매년 시댁 식구들 모시고 십 년을 꼬박 여행을 다녔습니다. 지난 8월 초 장마철 폭우 쏟아질 때도 남편이 뜬금없이 가야 한다 해서 갔다 왔습니다. 매번 가면 2박 3일은 머물렀습니다.


친정은? 지난 10년간 한 번도 같이 여행 가보지도 못했고, 가면 남편 눈치 보며 서너 시간 있다 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늘 맘 한편엔 울화가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10월 3일 오늘은 남편과 집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82년생 김지영. 이미 극장서 봤던 거지만 남편의 시선이 궁금했습니다. 보는 내내 신기하게도 김지영보다는 공유가 연기하는 남편 역이나 주변 인물들에 더 감정 이입을 하는 남편을 보며 어쩔 수 없나 보다 싶었습니다.


극장에서 친한 동생과 둘이서 볼 땐 어느 순간부터 서로 휴지를 뽑아들며 눈가를 닦아대고 있었더랍니다. 남편하고 볼 때는 TV 편성 시간이 저녁 8시 반이라 아이들 챙기느라 띄엄띄엄 보게 됐습니다.


아내 걱정을 하는 듯하면서, 밥을 차려달라거나 애는 바라만 보는 남편 역을 보며 남편 왈, "에이~ 같이 돌봐야지, 바라보고 있음 되냐? 관찰자네 관찰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큰 애가 저 영화 속 아기 나이일 때 딱 남편이 하던 모습이었는데 어쩜. 브라운관 속 인물들엔 저렇게 공감을 잘해주는지. 현실 속에선 이 사람이 방관자인 것을...


아이들이 조금 자란 지금도 다를 게 없지요. 남편은 TV 보고 있고 저는 옆에서 애들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할많하않' 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에게 안겨서 자고 있던 둘째도 눕혀놓고 나와서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영화 어땠어?"

"극 중에서 김지영이 그러잖아. '자꾸 벽에 갇히는 느낌이에요. 제가 출구를 못 찾은 것 같기도 하고요'라고. 그 말처럼 자기가 방법을 못 찾은 거 아닌가? 결론도 답답하고, 너무 한쪽으로 몰아간 게 아닌가 싶어. 남편도 김지영도 시어머니도 뭐 다 각자 잘못한 게 있잖아?"

"......."


사람마다 보는 관점은 다르지요. 남편 얘기를 들어보니 저도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본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봤습니다. 남편이 겪어온 삶에서 얻은 시각으론, 82년생 김지영이 겪은 삶이 충분히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같은 82년생 여자라도 결혼 여부, 아이 유무, 무슨 일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점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


제게 와 닿았던 대사는

"엄마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파트였습니다.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엄마의 흔들리는 눈빛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작년에 영화 보고 남겼던 감상평 링크를 덧붙여봅니다.

https://m.blog.naver.com/ann06/221694568605)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겠지요.

판이하게 다른 두 남녀가 함께 살게 되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 양보가 한쪽의 일방적 희생과 부담으로 점철되어간다면 불공평한 것 아닐까요?


저는 결국 다음 주, 한글날에 시댁을 다녀오게 됐습니다. (10월 11일까지 추석 방역기간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그나마 성과? 라면 1박만 하고 온다는 점 정도일까요.


오늘 밤엔 달이 보이지 않네요.

대신 르네 마그리트가 말했던 달이 제 마음속을 비춥니다.


우주에는 달이 한 개뿐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을 본다.
There is only one moon in the universe. Yet, everyone searches for their own.


p.s. 코로나 바이러스가 추석 및 가족에 미치는 영향: 영화 '82년생김지영' 과 보름달 을 매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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