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요?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공간, 숨길

by 바람코치 신은희

요즘 다시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어느덧 입동도 지나고 부쩍 쌀쌀해진 날씨지만, 걷다보면 이맘때만 느낄 수 있는 늦가을 냄새가 좋다.

자신의 열정을 빠알갛게 불태우고 장렬히 전사한 낙엽들의 바스락 소리를 들으며, 건조하지만 상쾌한 아침 바람, 어디까지 가봤니 외치는 듯 높게 올라간 파아란 하늘.

이러니 가을 아침 산책은 내 퀘렌시아다.


오늘은 동네 뒷길을 걷다가, 자주 가는 카페의 사장님을 길에서 마주쳤다. 마스크를 벗고 계셨던 사장님은,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변명하듯 먼저 말을 꺼내셨다.


"아유, 내가 원래 항상 마스크를 기고 다니는데, 딱 이 길에서만 마스크를 벗고 걸어요. 여기가 아시다시피 인적이 드물잖아요. 제가 출근하는 시간대에는 사람들도 잘 안 다니고 해서 마음껏 벗을 수 있어요. 쓰고 다니면 얼마나 답답해요. 딱 요 구간만 벗고 숨쉬니까 참 좋아요."


민망해 하실까봐 서둘러 고개를 흔들어 리액션을 하고선, 다음에 보자며 스쳐지나갔다.


다시 걷다 생각해보니, 사장님 말이 더 깊이 공감이 되었다. 한 두어달이면 끝나겠지 하던 코로나 사태는 어느덧 1년을 채워가고 있다. 그동안 당연시 했던 일상은 종적을 감춘지 오래다. 한동안은 길에서만큼은 마스크를 벗고,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만 철저히 썼었는데 이제는 대한민국 어디에서건 마스크를 안 쓰고 밖을 다닌다는 건 발가벗은 것처럼 날 것의 상태로 인지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마스크 외에도 이미 눈에 안 보이는 각자의 마스크를 쓰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괜찮은 척, 바쁜 척, 행복한 척 마스크......

마스크를 안 쓰고, 온전히 내 모습 그대로 당당히 다닐 수 있었던 적은 진정 언제였을까?




지금 이 코로나 상황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더 나만의 퀘렌시아가 절실해졌다.

‘퀘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안식처라는 뜻이다. 원래는 투우경기에서 소가 잠시 위협을 피할 수 있는 특정 영역을 말하는 단어였는데, 현대에 들어서는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들어와서 힘을 회복하고 가는 각자의 공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인생은 쉼표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 가며 연주해야만 한다.(중략)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퀘렌시아이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내 앞을 가리는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숨을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이쁜 척, 즐거운 척, 괜찮은 척 하지 않고 온전한 내 모습으로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어보자, 나만의 퀘렌시아!


거창한 곳 말고, 이쁜 곳 말고, 그저 내가 숨쉴 수 있고 편안한 그런 시간과 공간을 창조해보자!

참 쉽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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