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걱정된다면...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권유한다.

by 바람코치 신은희

새해가 되면 늘 새로운 마음으로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새롭게 세우곤 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일에 치여 한 해를 보내다보면 어느덧 연말이 다가오고, 지키지 못한 계획들에 가슴이 옥죄어 오곤 했다. 그런 날들은 지난해 오토굿바이 했다.


2020년 11월, 강의 도중 연단에서 쓰러질 뻔하고 30분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려 조심조심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내 삶을 다르게 보기로 했다. 이대로 에너지를 펑펑 쓰고 살다가는 제 명에 못 살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을 오롯이 나에게 주는 휴가기간으로 잡았다.


아...쉽지 않았다. 보통 12월 31일까지 강의 연락이나 급매?강의 요청들이 쇄도하고, 일정이 빡빡하게 들어서는게 다반사였던 나인데 이 황금?기에 '쉼' 이라니? 나는 정말이지 지독한 일 중독자라서, 한 번 일을 맡으면 이 한 몸 갈아넣어서라도(이를테면 밤새기, 주말없이 일하기, 끼니 건너뛰고도 일만하기 등등) 업무 종결을 짓는 습관을 가졌다. 그 습관 덕에 병원 가는 것은 사치요, 효율성 낭비라 조금 아픈 건 그냥 진통제 먹고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니 몸이 남아날리가 있나.


자율신경계 이상이라는 진단과 메니에르 증상 의심, 삼차신경통...그 외 무수한 진단명을 받아들고 병원문을 나서며 펑펑 울었다. '일찍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아직 하고 싶은게 많아. 나에겐 가족이 있어. 우리애들은 아직 너무 어려 엉엉엉......' 그렇게 시그널을 격하게 받아놓고도 예전 업무 습관으로 복귀하면 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2021년 새해 계획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오롯이 키워드 하나만 붙잡고 가기로 했다. '건강'

새해 계획을 세우는 대신 내 마음을 다시 세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3개월 동안.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주 몸이 근질근질하고 걸려오는 강의 의뢰 연락에 자꾸 귀가 솔깃하고 그렇다. 하지만 벌써 올해 세번이나 업무 요청을 거절했다. (예전의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나 지금 시간 많은데~ 강의 할 수 있는데~ 어려운 주제도 아닌데~' 이런 내면의 목소리들이 나를 간지럽히지만 안 될 일이다. 놀랍게도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다. 워낙에 애 천성이 호기심 천국이라 그렇지, 무언가 일을 한다는 건 내게 엄청난 부담이요 스트레스다. 그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기 싫고, 줌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질렸고, 사람들과 연락하는 것도 두렵다. 확실히 내 상태는 번아웃이다.


지난 12월부터 내게 새로 생긴 습성?은 자기계발서 기피현상이다. 정보습득을 위해 의무적으로 읽었던 책들 말고, 정말 내가 좋아하던 책들을 읽고 싶었다. 요즘은 의도적으로 소설만 파고 있다. 새해 들어 독파한 소설이 벌서 4권이다. #달러구트의꿈백화점 #숲과별이만날때 #시간을파는상점1,2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등이다.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라도 너무 재미있고 시간도 많으니 하루 이틀이면 읽게된다. 유희적 독서는 유익하지 않은가?를 잠시 고민하다가도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종이책 페이지를 한 번 더 넘긴다.


두번째로 내가 거의 매일 챙기는 것은 그림그리기다. 중학교 때 이후로 4B연필을 처음 잡아봤다. 나는 원래도 국영수보다 예체능(아, 체육은 아니었지 ㅎ)이 발달했던 아헤였다. 나를 성장시킨 것은 8할이 책, 음악, 미술이었다. 다른 아이들 보습학원 다닐때 나는 미술학원 보내달라고 떼썼고, 수영장도 매일 갔었지 아마. (그때가 그립다) 여하튼 다시 연필을 잡으니 선 긋기만 해도 예전 생각나서 자꾸 설레인다. 물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끼어들어서 산통을 깨지만 그래도 그림은 앞으로 네달간 계속 그릴것이다.


세번째로 나는 요즘 정말 잠을 시도 때도 없이 잔다. 물론 밤에 쉬이 잠 못드는 불면증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으나 예전같았으면 쓸데없다 싶어, 졸려도 눈 부릅뜨고 일하던 나였는데 요즘은 졸리우면 잔다. 침대에서 나른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내가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 드는 것은 정말이지 언제라도 행복하다.


네번째로 번아웃 상태이며서도 자꾸 어떤 모임이나, 교육에 등록하려는 나 자신을 억제하는 중이다. 내 자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걸 나도 모르면서 무작정 지식을 얻겠다고 듣는 교육은 배움이 아니라 쑤셔넣기다.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지식들을 체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빨라 보이지만 본디 느린 사람이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에 일처리를 빨리해서 얻은 건 더 많은 일이다. 느리게 행동하고, 막 늘어져있고, 귀찮은 건 하지 않고, 내 본래의 욕구에 충실해본다.


법정스님은 생각할만한 여지를 많이 줘서 자꾸 덮게 만드는 게 좋은 책이라 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잘하는 것이라도 필요할 때 멈추는 것. 멈춰서 내가 무엇을 위해 이 활동을 하고 있나를 생각해보는 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이러기를 아직 3주 정도밖에 안 지났다. 그런데 어젯밤에 참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자꾸 더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조금씩 샘솟아 오르는게 아닌가. 이런 욕망이 자꾸 샘솟다 보면 조그만 연못이 될 것이고, 그 연못은 곧 터져흘러 실개울이 되고, 더 지나면 넓게 흐르는 강이 될 지도 모른다. 강은 장마 속에서 유량이 늘어나 넘쳐흐르더라도 약 3일만 지나면 본래의 유속과 유량을 되찾는다고 들었다.


나도 그렇게 나만의 속도와 에너지로 흐르는 강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만 지금 내 상태로는 3일은 안되겠고 그래서 3개월이란 휴식기간을 잡은 것이다. 그동안 충분히 쉬면서 정말로 literally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어렵지만) 지속해나간다면 나는 그만큼 또 삶의 균형이 생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믿어본다. 나는 3개월간 쉬어도 본래의 유속과 유량을 되찾는 강처럼 다시 나의 필요와 쓸모를 잘 찾아서 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나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니 쉼이 필요한 그대들이여,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걱정되어 자꾸 정보를 과식하려 하거든 일단 멈춰보자. 그리고 마음껏 아무것도 하지 말아보자. 그러다 때가 되면 내 몸이 다시 알아서 나의 쓸모를 찾아낼 것이다.



(*추신: 사실 내가 금수저거나 돈이 많아서 쉬는건 아니다. 이러는 나도 생계형 워커이고...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코로나 폐업된 회사서 퇴직해 집에서 같이 놀고 계시다. 아이 둘은 키워야 하는데 빠듯한 살림이지만 줄일 수 있는 소비는 줄이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행복은 늘려본다.)



keyword
이전 14화일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