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11년차인 우리 부부는 신혼 1년 반 지난 첫째 임신 후에야 중고차를 사서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가 운전생활이 10여년. 차가 있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은 자주 있지만 제주 여행에서는 한번도 버스를 타 본 적이 없었다.
우리부부에게 제주도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방문하는 곳이었다. 신혼일 때는 연말연시 기념으로, 임신했을 때는 태교 여행으로, 때론 시댁식구들 모시고 오기도 하고, 우리가족끼리만 오기도 했다. 그 때마다 렌터카는 이 넓은 제주도를 돌아다니는데 일등공신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제주2주살기를 결정하며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도 차 였다. 한달살기에서 2주로 줄였기 때문에 탁송을 하기에도, 그렇다고 렌트를 15일 하기에도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도착해서 2박3일, 갈때 2박3일 렌트만 하는 것이었다.
제주버스! 까이꺼 한번 타보지 뭐! 하며 호기롭게 결정한 우리부부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날씨와 배차간격.
차를 렌트한 기간에도 그 이후에도 2주살기 초반 날씨는 바람섬 제주의 아성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가 머물기로 고심끝에 결정한 숙소는 초.초.초 시골이었다. 하루에 버스가 9회 밖에 오지 않는다. 그나마 20~25분 간격으로 버스가 오는 정류장은 도보 15분 거리에 있었다.
성인 걸음으로 15분이야 먼 거리가 아닐수 있지만 꼬꼬마 아이 둘을 이고 지고 달래고 가야 하는 그 거리는 30여분이 걸린다. 근데 초반 날씨가 눈보라, 비바람 이었기 때문에 렌터카 반납 후 근 3일은 꼼짝없이 집콕이었다.
참! 가장 가까운 편의점도 도보 15분 거리. 더 큰 마트는 버스를 타고 20여분은 가야 한다. 버스 배차간격 20여분까지 고려하면, 식료품 사러 한 번 이동하는데 넉넉잡아 편도 1시간. 오. 마이. 갓.
원래 우리 주거지는 삼면이 편의점이요, 도보 5분 거리에 상설시장이 있는데다 1층에 24시간 과자할인점까지 들어서서 뭔가 사먹는데 불편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게다가 도보 5분 이내 카페도 세 군데 였으니 커피 한 잔 사치부리러 다니기도 쉬웠다.
차가 없으니 당장 먹을거 사러 가는 것도 불편하고, 아직 다리가 쪼꼬만 아이들은 5분만 걸어도 힘들다 투정하니 어디 구경하러 가기도 어렵고, 날씨 영향을 참 많이 받았다.
저질러놓고 닥치면 부딪쳐나가는 습성이 있는 우리 부부. 그래 이 정도면 천생연분이지ㅎ 난감하고 무료하던 시간도 이틀이면 종료. 우린 어떻게든 머리 맞대고 헤쳐나간다.
우리는 금전적 부자라서 2주살기를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시간부자라서 올 수 있었던 거라 제주 생활하면서도 엄청 자린고비 생활을 고수했다. 왠만한 생필품이나 먹거리는 냉동식품 등으로 집에서부터 싸왔고 도착한 이튿날, 하나로마트에서 박스로 1.5L생수 6개 들이, 김치 400g, 쌀 2kg 외 두루말이 휴지 등을 추가 구입해뒀다.
그 다음으로 필요했던 먹거리는 오일장 날짜를 체크해뒀다가 장날에 맞춰 오전에 이동해서 보다 저렴하게 먹거리를 구매해왔다. 차가 없으니 가방을 메고 가서 들어가는만큼만 샀다.
슈퍼도 멀고 차도 없는 뚜벅이 생활을 하다보니 얼마나 우리가 습관처럼 과자나 주전부리를 필요이상으로 많이 사먹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지내며 애들은 간식으로 당근밭에서 받은 당근을 과자 대신매일 먹게 되었다. 처음엔 당근 싫어! 외치던 애들이 이젠 1인 1당근 할 정도다.
우리 부부는 자동 다이어트가 되었다. 이전의 우린(특히 남편은) 어지간히 안 움직였다. 집에선 게을러지는데다 소파와 물아일체 되거나 가까운 거리도 춥다고 차타고 가던 사람들이었다. 근데 여기선 뭐 하나 필요한거라도 살라치면 왕복 30여분은 노상 걷는데다 바닷가 보러가거나 좀 구경하고 싶으면 1~2km는 보통으로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걸으니 주변 풍경도 더 자세히 들어오고, 차를 탔으면 지나쳤을 작은 가게들이나 간판, 지역 분위기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버스 노선을 외우니 읍, 면, 리 단위 이름도 거진 외웠다.
~동동 ~신동 이런 이름이 넘 귀여웠던 버스 노선.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
숙소 주변은 끝없는 밭담길이어서 매일 초록초록한 밭과 유채꽃, 당근, 무우, 배추들 보는 정감미에 눈이 편안해졌다.
한 번 장 볼때 필요한 것만 사게 되어 주전부리 간식이나 충동구매 등 쓸데없는 소비도 많이 줄었다. 너무 무겁게 사면 한참 걸어가야 하는데 짐이 되는데다 양쪽으론 아이들 손도 잡아야 하니, 메는 가방 하나에 들어갈 정도만 채워야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우니까.
원래 제주도에 올레길 걷기 차 오시는 분들이나, 뚜벅이 생활이 일상인 분들이 보면 이런 소소한 깨달음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는 말처럼 10년 가까이 어디든 쉬이 차 몰고 다니다가 생판 모르는 리 단위 동네에서 애 둘 델고 걷고 버스타고 다니려니 처음엔 퍽이나 난감했었다.
이제 곧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듯 이런 생활은 잊고 다시 차가 주는 편안함에 젖어들수도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쉽게 애들한테 슈퍼에서 과자를 사주거나, 필요 이상으로 장을 많이 보거나, 짧은 거리도 차로 이동하기보다는 우리가 느꼈던 좋은 불편함을 계속 유지해 보고 싶다. 그래서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