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안사람을 여보나 당신으로 부르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든 말도 안 되는 생각인데 나이를 먹을수록 개인보다는 그 사람의 위치가 중요해지는 것 같다. 이삼십 대는 젊은이, 청년, 아가씨. 뭐 이렇게 불린다가 중년이 되면 누구나 "아저씨" "아줌마"로 불린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면 "머시기" 고객님이 되고,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사장님, 사모님으로 불린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아기들은 웃기만 해도 칭찬을 받는다, "아이고 너무 잘 웃네 귀엽다." 그러다 초등학생 쯤되면 인사만 잘해도 칭찬을 받는다. "어린아이가 인사도 참 잘하네." 하며 말한다. 그렇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평상시 행동만 해도 칭찬을 받는다. 그렇게 칭찬을 받고 잘 지내다. 청소년기가 시작되면 왠지 작은 행동들이 어색해지기 시작한다.
대학생을 넘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칭찬보다는 의무가 생긴다. 그리고 이름보다는 직책과 자기가 속한 곳의 그에 따른 명칭이 생긴다. 김 과장, 이 차장 같은 직책으로 불리거나 아님 선생님, 사장님으로 불린다. 난 사장도 아닌데 주유를 하거나 물건을 살 때는 사장님이 된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부를 땐 아저씨가 되기도 한다.
난 와이프란 영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한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그냥 나의 부인이란 호칭을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으니 와이프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안사람이란 말은 참 좋다. 안사람, 바깥사람 이런 안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그렇다. 내 안에 있는 사람이란 표현은 꽤나 멋진 것처럼 느껴진다. 내 마음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난 다른 사람에게 나의 부인을 말할 때는 안사람이란 말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안사람을 직접 부를 때는 안사람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누구도 그렇게 불리지는 않을 거다. 난 남자지만 여성인 안사람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주로 누구 엄마로 불린다. 모르는 사람들은 역시 아줌마로 부르겠지만 말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안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가끔 어딘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본인 확인을 할 때도 주소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을 부를 땐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누구야! 주로 뭔가 시킬 일일 있을 때나 밥 먹자! 하고 부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직은 이름을 불려주는 사람이 많이 있다. 친구들도 그렇고 선생님도 이름을 불려주시니까 말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특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 때랑 바뀐 것도 별로 없다. 솔직히 생각이 더 성숙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나이만 먹고 이제는 비가 올 것 같으면 몸이 쑤신다는 것 빼고 말이다.
별거는 아니지만 난 나의 안사람이 누군가로부터는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그 사람 그대로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누구의 엄마도 아줌마도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그래서 난 안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그 사람이 나의 친구이고 인생이란 여정의 나의 동반자로서 말이다. 그래서 난 그냥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좋다. 물론 안사람이 내 이름을 약간 크게 부르면 약산 무섭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