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참 자질구레한 것들을 많이 모았었다. (남들에게는 쓰레기로 보일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모았다.'라기보다는 '버리지 못했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나에겐 어떤 마음이든 그랬다. 쉽게 받았지만 쉽게 버릴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받은 마음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러나 그것들 중 대부분은 아마 내가 만들어 낸 마음이었을 것이다. 흘려보냈어야 했지만 흘려보내지 못하고 계속 갖고 있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계속 안고 있으니, 어느샌가 필요한 것들이라고 착각하게 되어버렸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길 바랐다.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쓸어 담아, 이젠 놓을 곳도 없는 마음 언저리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럼에도 공허함이 소리치는 낮은 한숨에, 멈출 수가 없었다.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빈 곳 없이 꽉 메워지는 나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때가 되면 이토록 아리는 마음도 평온해지고, 시리게 부는 바람도 잠잠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세상이었다면 애초에 위태로운 세계를 마주하지도 않았을 거라는걸, 왜 알지 못했을까.
간신히 붙잡고 있던 세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본래 허무로 이루어진 세상인지라, 무언가들이 자리 잡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와 반대로 모든 것들이 원래 없었던 모습으로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안타깝게도 가득 채워지길 바랐던 공간엔 오히려 큰 구멍이 생겼다. 찢어지는 공간만큼이나 찢기는 마음에는, 그전의 쓰라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아픔이 알알이 배어들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견뎌냈을까. 아니, 견뎌냈다.라는 표현 자체가 과연 이 처참함에 어울리는 말이 될 수나 있을까. 한심함에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다가도, 떠나보낸 것들이 아쉬워 돌아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공간을 아무리 꽉 쥐고 당겨봐도, 힘껏 끌어내봐도 더 악화되어 갈 뿐이었다. 중심이 비어버린 공간은 아무리 사방을 다 에워싸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미련이 가득 남은 공간에 아무리 다른 것들을 채워 넣어도 시려오는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구멍을 막을 수는 없었기에, 썰렁한 공기를 가득 감싸 안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더 차가워지는 것뿐이었다.
한바탕 울고 난 자리는, 미련이 제아무리 차가워도 눈물 보다 단단할 수는 없을 테니.
결국 평온함과 잔잔함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몰아치는 바람에 정신없이 흔들리며 좌절할 때, 불현듯 스치는 질문은 바뀌어 있었다.
과연 내가 채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무언가를 채우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채워지길 바랐던 것 같다. 그 바램이 아무것도 놓지 못하게 만들었고,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무턱대고 모은다고 한들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일 뿐이었다.
'공허함'이란 대체 무엇인지,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 열정적이었다고 해도, 아무런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고 해도, 아니면 그 반대인 삶을 살았다고 해도. 갑자기 모르는 새에 알 수 없는 기분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알 수 없다'라는 말은 괴롭지만,,, 그 이유를 찾으려고 더 괴로워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공허함이 느껴진다는 것은 (내면으로든 외면으로든) 그만큼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채운만큼 비워냈기 때문에 또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랜 시간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