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옥죄는 짓을 참 잘한다. 만약 특기 적는 칸에 별의 별거를 다 적을 수 있다면 '스스로 억압하기'를 적을 것이다. 생각이 자유롭지 않으면 행동도 망설여지기 마련이었다. 자유로움을 너무 갈망하다 보니 반대로 억압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누가 자유로운 삶을 싫어할까. 그런데 과연 자유로운 삶이란, 생각이 자유로운 느낌이란 무엇일까.
평온한 것, 편안한 것,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인정할 수 있는 것, 흘려보내줄 수 있는 것, 놓아 줄 수 있는 것, 잘 상처받지 않는 것, 흔들리지 않는 것,,,
저 위에 적은 것들이 정녕 자유로움일까, 저 위에 적은 것들을 다 가져도 자유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자유로워질 수 없는 사람일까. 나는 자유로움을 갈망하지만 무엇이 자유로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후련한 마음이고 싶었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로잡히지 않고, 붙잡히지도 않은 상태를 바랐다. 미련도 집착도 후회도 남지 않은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완벽한 이별을 바랐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은 끊임없는 구실을 만들며 마지막이라고 속삭였고, 그렇게 못 이기는 척 넘어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떨쳐버리지 못하는 형편을 보고 있자니, 그럴 수도 있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론이 나지 않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그렇게 새어 나오는 한숨들 사이로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은 수도 없이 남겨졌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어느 순간 더욱더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냈고, 그럴수록 완벽과는 멀어져만 갔다. 강박은 더 무거운 한숨만 일으킬 뿐이었다. 그러니 절대 날아갈 수 없었고,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압박에 시달리며 정교하게 쌓아가던 것들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뭉개져버렸다.
마음의 '중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방법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적정한 선은 언제나 중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중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도에 알맞은 곳을 찾아야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 중간, 가장 안정적이지만 가장 위태로운 알 수 없는 중간. 그 중간에 닿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적절함을 찾기는 쉽지 않았고, 미세한 조정 끝에 적당한 길을 찾았다 생각했건만 길의 끝은 어중간하게 끊겨있었다.
사실 그 어딘가에 닿기 위해서 노력했다라기보다는, 애써 다가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노력이란 이유를 아는 것이었지만 애써 다가가는 것은 이유도 모른 채 행동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다가가지 않는 것이,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 답이었을까. 그래, 결국 내가 만들어 낸 것들은 곧 내가 없앨 수 있는 것들일 테니까.
과연, 내가 바란 '완벽한 이별'은 어떤 모습이었어야만 했을까. 빈틈 하나 없이 허술하지 않은 것들이 모여 완벽함을 이루면 그게 좋은 이별이 될 수 있을까. 이별에 있어서, '좋다'와 '나쁘다'의 구분은 대체 누가 정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어떤 이별 속에서도 나의 염원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완벽한 이별이란 없었다.
아마도 정해진 것은 없을 것이다. 마음이라는 정해진 것 하나 없는 공간에 딱 맞춘 듯한 퍼즐 조각을 끼우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모든 걸 정하려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게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니 완벽을 바랐지만 무엇이 완벽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나 '시간'이란 것이 필요했다. 막막함에 놓쳐버린 시간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걸어야 했지만 그렇게 걷다가 순간들에 어울리는 시간들이 찾아지면, 그에 따라 지금의 틈이 맞춰질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