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랜 말

저만치 가버린 것은 덩그러니 남겨질 뿐일지라도.

by 십일아


사람과 사람 사이는 복잡하다. 서로에게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어주며 끈끈해지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멀어지기도 하고, 상처를 주며 눈물을 흘리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한 만큼 상대방은 나를 존중해 주는 것 같지 않으면 쌓이고 쌓인 서운함은 실망감이 되고, 결국 마지막 믿음을 놓아버리고 만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사소한 일이 되어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서운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들도 있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낀다면 전해지는 강도가 더 진한 것 같다. 가깝다는 것은 아주 든든할 때도 있지만 매우 외로워질 때도 있었다. 그만큼 내가 많은 마음을 쏟았기 때문일 것이다.




억지로 맞춰서 좋을 건 없다. 분명 그 끝에는 맞춰주는 쪽이 다치기 마련일 테고, 고스란히 모든 아픔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온통 상처로 둘러싸여 지칠 대로 지쳐버렸을 때였다.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처음엔 서운했고 후엔 미웠으며, 결국 싫어져 버리는 마음이 슬펐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자신이 제일 힘들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반복적으로 쌓인 복잡한 감정들은 서운함을 넘어선 화가 되었고, 응어리져 명치에 얹힌 듯 내려가지 않았다.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조차 않고 무시해버린 그 순간, 붙들고 있었던 정을 놓아주었다.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마음과 아닐 거라고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마음을 말이다.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이 혼자만의 착각임을 알게 되었을 때, 기분 좋은 설렘이 아니라 감내해야 하는 고통임을 깨달았을 때, 멈춰야 했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게,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했다. 그렇게 버텨야 했지만 마음의 영역은 내 것이 아닌 듯 움직였고, '그만'을 외쳤을 땐 이미 저 멀리 나아가 있었다. 멈춤은 나의 의지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토록 확고하게 나 자신을 지켜나가는 사람이고 싶었으나 단호함과 냉정 사이의 확고함은 어려웠다. 울컥, 억울함이 나를 감쌌고 그 억울함은 나에 대한 연민이 되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애써 외면하고 외면하다, 숨이 턱 막힐 때에야 상처들의 외침을 들었다.


혼자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혼자이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건, 나에게 어떠한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하기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고 또 멀어질 수도 없다. 적당한 거리.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그 거리를 찾으러 홀로 길을 나섰지만, 어느샌가 그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방황하다가 결국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포기라기보다는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함께 걸어간다는 건 너무 큰 배려도, 섣부른 기대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보여준 만큼, 내가 알아준 만큼, 상대방도 그래주겠지. 하면서 몇 발자국 앞서 나가 있는 건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드는 바탕이 될 뿐이었다.

속상하다는 것은 내가 준 소중함을 상대방이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아서 마음이 아픈 것 아닐까.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진심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고,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끊어내버리는 게 가능하다면 그것이 가장 단순할 테지만 만약 그러기 힘들다면 그럴 수 없다면, 그렇다면 잠시 소중함을 거두고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내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무턱대고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는 마음도, 무턱대고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도 거두는 것. '거리'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분명 내가 가진 마음이 소중하다는 것엔 변함이 없을 테니, 그 마음을 잊지 않길 바란다. 결국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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