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랜 말

방황과 실수를 좌절과 실패로 생각하지 말 것.

by 십일아


좌절과 실패를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그것들은 생각지도 못할 때 찾아오거나 혹은 생각 이상의 아픔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견디는 게 익숙하다 할지라도 처음의 강렬함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었다. 무방비 상태였다면 더더욱 깊게 찔려,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스며들었다.

언제나 그 감정들이 과연, 나에게 무엇인가 긍정적인 흔적을 남길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혔지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주 부정적이고 괴롭기에,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만약,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마음을 내려놓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마음의 평안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변하고 싶었으나, 변화는 두려운 것이었다. 익숙함을 져버리기엔 너무나도 큰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 결심이라는 것이 제아무리 내 마음속에서 이루어진다지만, 그것은 단순히 나의 의지만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물론 익숙함 또한 마냥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지는 않았다. 아주 절묘하게 시시때때로 정신을 흩트려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끊임없는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좋음과 좋지 않음 사이에서, 실망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은 익숙한 괴로움.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안전한 후자였기 때문이다.

익숙해져 간다는 것에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고민할 필요 없이 감당해 내면 되는 것이었지만 결국 단념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대로 수긍될 뿐이었다.

변화와 익숙함의 사이, 그 어딘가의 갈림길 앞. 분명 나를 더 메마르게 하는 순간에도 변화를 택하지 못했다. 용기의 부재, 한마디로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회복의 기간은 흔히 말하는 다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아니었고, 좌절에 잡아먹힌 채 실패감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무심코 그 과정을 들여다보니, 내가 바란 '변화'란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길 바란 것이었다. '내'가 없는 변화라,,, 무슨 말도 안 되는 것을 바랐던 것인가. 거치고 싶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국 거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은 먹먹하게 남겨진 마음을 서서히 쓸어주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들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에 후회가 아닌 고개가 끄덕거려졌을 때, 적어도 내가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단단한 다짐이길 바랐고, 깨어지지 않는 다짐이길 바랐지만 그럼에도 굳건하던 다짐들이 흔들릴 때는 많았다. 잦은 생채기들이 쓸려올 때면 꼼짝없이 붙잡힌 채로 하릴없이 기다려야 했지만, 흔들리면 흔들리는 채로 휘청이기로 했다.




사나워진 바람에 맞서지 않았다.

마음껏 할퀴며, 내가 너덜너덜해지더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한껏 불고 나면 잔잔한 바람도 오겠지.

낮은 뒷동산에 올라 소리치는 바람을 맞으며, 맘껏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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