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받은 말.

by 십일아

그때 내가 너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이 짧은 생각이 나에게 스쳤다.

"그럴 수도 있었다. 너의 탓이 아니다." 하는 다 지나가버린 위로가 아니라, 너의 손을 잡고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냈다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너에게 떳떳했을까. 더 깊은 말들이 나에게 박혔다.

시간이 지나면 흘러버린 세월만큼이나 회색빛의 먼지들이 너에게 쌓여있을 줄 알았는데, 너는 언제나 아득한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래, 아무리 지울래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은 있고,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까. 나조차도 너를 미워하기 바빴으니, 너는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었겠구나. 너를 탓하고, 너를 욕하고, 그렇게 미워하다가도 애써 다독이고, 위로하고 그렇게 보듬어주다가도 사실 나는 더 이상 너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정말 나의 진심이었을까, 두려웠다. 그 마음을 느끼자 더욱이 너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졌다.


언제라도 회색빛이 너를 감싸 데려가길 바랐다. 사라지듯 잊히길 바랐다. 이미 지나온 날들이 이미 지나간 일들이 되기 위해서는 숨 쉬는 순간에 너를 마주해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아득한 마음이 진정으로 아득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너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고, 매 순간 너의 뜨거운 숨을 나에게 전했다. 끝까지 함께 하는 너를 보며, 역시 홀로 떠나고 싶어 하는 나를 괘씸하게 여긴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착각에 사로잡힌 미움에 너를 찾아가 한가득 끌어 담은 가시들을 들이부었다. 그 후, 한동안 너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난히도 어두운 늦은 밤, 별 하나가 밝게 빛났다.

아득함마저 사라져 소멸되었으리라 생각했던 너를 만났다.

너를 밀어냈던 나였는데도 너는 나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너는 언제나 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는 것을 잊지 마"

강렬한 너의 속삭임이었다.


그때야 알았다.

내가 너에게 가졌던 미움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미안함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너에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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