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다는 게 나를 숨 쉬게 했다. 분명 끝이 있다는 게 나를 괴롭게 하던 이유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을 터였다. 연결되지 못하는 것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붙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것들은 불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불안을 계속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불안을 알기 전이 나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불안을 알기 전에도 불안은 존재했다. 쫓아내기 위해 쫓았던 것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쉽지 않게 찾아온 기회였음에도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쉽게 찾아온 기회 또한 매한가지였다. 기회라는 것은 온전히 얻을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어줘야 할 것도 있는 것이었다. 또한 분별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처음부터 이상하리만치 강하게 느껴지던 어긋남은 대체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언덕을 아예 쳐다보지도 말아야 하는 것인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넘어서야 하는 것인가. 분간하기 어려운 만큼 고민의 시간은 길어져가고, 신중한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으나, 결국 '처음'이라는 단어가 지닌 아우라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들도 있었다. 어떤 것이든 아무리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지만 이미 정해진 답을 잠시 비껴갈 수는 있을지라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리 알아차리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어깨를 짓누르던 공기가 나의 살을 파고들었을 때에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야 만다. 심장을 찌르는 삭막함 속에서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었지만 제발 그 속에서 길이 보이길 더 간절히 바랬다.
언젠가 감정이 없는 듯 살아내야 하는 일상에 적응하는 것은 사치라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복잡하고 복잡한 나에게 이러한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많은 외침들이 경계선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니, 충격은 되려 공포가 되어 입을 틀어막았다. 어디엔가 갇힌 듯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고, 웅얼 거리는 소리에 마음을 기울였지만 왜인지 들여다볼수록 밀어낼 뿐이었다. 그사이 혼란에 혼돈이 더해지던 나의 영역이 뒤틀려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고요에 나의 세상이 얼어붙었다. 그 어떤 것도 들어올 수 없는 단단한 얼음벽이 곳곳에 박혔다. 흐르던 물줄기조차 그대로 멈춰버린 차가운 고요 속에서 살아갔다. 쿵쿵, 벽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용없다며 돌아섰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경계선 그 어딘가, 지치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울림을 만들어내야 했다. 소리에 맞춰 함께 벽을 두드리자, 진동이 더 짙은 울림을 불러왔고, 그 울림은 메아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메아리가 깃든 벽들이 갈라지며 끝내 얼어붙었던 한줄기의 물이 흐르자, 이때다 싶었는지 고요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는 물줄기에 손을 가져다 대니, 불끈 쥐었던 주먹 안, 숨죽여있던 온기에 드디어 나를 감싸고 있던 고요가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