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속에서 숨을 고르다.

by 십일아

길에 앉아 사라지는 노을을 한참이나 바라본 적이 있다. 그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외딴섬이었다.

후후 입김을 불다가, 곧 낮게 한숨이 일었다. 찰나에 코 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깊은 한숨을 싣고 사라져갔다. 흩어져 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했다. 바람처럼 매섭다가도 선선해지고, 차갑다가도 따듯해지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다가도, 그 바람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무엇들의 삶을 사는 것도 같았다.


오늘은 바람이 살랑였다. 그러나 함께 살랑이는 나무와 풀과는 다르게 나는 괴롭게 흔들리는 존재에 불과했다. 나조차도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눈물 나도록 나를 버겁게 하는 이유였다.

파랗던 하늘이 어째서 붉은색으로 사라지는 것인지, 왜 또 검은색으로 숨죽이고 나를 잠재우는지.

그저 궁금할 뿐이었고, 답답할 뿐이었고, 눈물이 차올랐을 뿐이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되뇌다가도 내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대보라며 반박하던 날들이었다. 털어도 털어도 후련하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작은 모래알 하나라도 털어내지 않는다면 벼랑 끝의 돌멩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위태롭던 끝, 결국 두려움의 결말은 추락일 뿐인가. 끝도 없이 이어지던 잔상들에 떠밀리고 있었다. 이제는 막아낼 힘도 잡히지 않았고, 더 이상 막아내고 싶지도 않았다. 정적 속에서 숨을 고르며 어두워질 하늘을 기다렸다. 서서히 사라지는 해의 빛깔이 구름에 스며들더니, 곧 밤이 되었다.




나는 파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또한 언제나 세찬 바람이 더 높은 파도를 불러일으킬 거라는 것도 안다.

내 안에 일렁이는 파도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임을 아주 슬프도록 마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찬 바람을 맞고 거대해진 파도 위, 위태롭게 밟고 올라선 저 끝의 노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넓은 도화지에 무지갯빛을 담을 수는 없을지라도,

나의 파란빛과 붉은빛과 검은빛을 가득 묻혀 색을 입히면 언제나 하늘이 됨에 변함은 없다는 걸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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