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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Mar 02. 2024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 알아.

나의 시작에는 언제나 끝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작도 전에 끝을 챙겼고, 늘 시작과 함께 끝을 안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 물론 그 끝이 언제 올지는 모르는 것이었지만 어차피 올 끝이라면 미리 받아놓고 함께하는 것이 한결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갈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떠올리는 것은 결말을 다 안다는 듯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정해지지 않은 끝을 마치 정해진 것처럼 고정해 놓고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픽 웃어 보였다. 정말 바보 같은 마음이 아닐 수 없었지만 어떠한 끝이라도 담담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후련하게 만들었던 끝과는 다르게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던 끝은 보다 섬세하게 마음을 긁어대는 불안과도 같았다. 서로 밀어내지만 가장 강력하게 끌어당기며, 공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뒤엉켜버린 끝이었다.

내가 바라보았던 끝은 쓰디쓴 공기가 감도는 결말이었다. 언제나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그 끝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 나와 더 어울리는 삶이 되도록 노력했다.




너의 시작은 어떤 끝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너는 나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고이 접어놓은 너의 소망을 보여주었다. 보이지도 빛나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고 외로웠으나 분명 꾸밈없이 순수하고 선명한 마음이었다.

너는 혹여 만나게 될 끝이 너무 괴로운 끝이면 어쩌나 하며, 상처 입기가 두려울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내 안의 용기를 갉아먹으며, 나의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나의 시작에도 끝이 있지만, 매 순간 끝에 괴로워하고 겁이 날 때도 많지만 무너지더라도 좌절하더라도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고 나아가서, 해맑게 다가오는 찰나의 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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