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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Mar 07. 2024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 내게 내밀었던 두려움 속에는 살짝의 설렘도 함께 있었다. 두려움 속에 담겨 있는 설렘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리도 두근거리는 이유는 두려움이 아닌 설렘이라며 나를 이끌었다.

나는 설렘이 두려움을 이겼을 때의 희열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설렘이 두려움에 먹혔을 때의 암담함도 놓지 않았다. 나를 거쳐갔던 일들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고, 시간을 쏟으며 의미 없을 저울질을 해댔다.


경험해 본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가져왔던 것은 표현할 수 없는 암울함이었다. 암울함 속에 박혀 있던 두려움을 또 마주할 수밖에 없었을 때, 힘들지만 버텨내자며 할 수 있다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두려움보다 더 거셌던 암울함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암울함보다 더 거대했던 두려움을 놓지 못했다. 내가 지나쳤던 일들에 틈틈이 도장을 찍고, 마음을 깎으며 나를 향해 더 세차게 끌어당겼다.




두려움이라,

어떤 것이든 거뜬하게 없애버리고, 어떻게든 강력하게 짙어지는 두려움이라.


두려움에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만나게 된 희미하게 식어버린 내 믿음들과 우울하게 갇혀 버린 내 바람들은 차라리 그대로 사라지기를 원했다.

나를 둘둘 감싸 안은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뜀박질을 해봐도, 곧 못내 아쉬운 척 빙빙 맴돌던 알 수 없는 붙잡힘에 다시 또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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