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주목할만한 경제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사회의 소수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국가의 초창기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이성계가 발견한 조선에 의해 500년간 통치되었다. 조선 왕조는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는데, 이 기간에 과학 기술과 전통문화가 크게 발전했다. 유교는 가부장제 질서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여성은 종종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를 지키기 위한 조력자쯤으로 여겨졌다. 정부는 여성의 출산과 자녀 양육, 집에서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재혼 제한, 아내와 남편의 법, 그리고 칠거지악 (이혼의 7가지 유효한 원인) 등의 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법률은 21세기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재혼 제한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칠거지악은 남성에게 유리하게 제정되었다. 아내와 남편에 관한 법에는 남편의 허락 없이 여성이 외출해서는 안 되며 가까운 친척들과만 연락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남성우월주의적인 생각은 거의 모든 여성과 그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여자들은 남편을 제외한 다른 남자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지위가 높은 여성들은 외출 시에 장옷이라는 긴 코트를 머리 위에 썼으며 가마를 타고 다녔는데 당시에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예의를 갖춘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차별은 17세기 이후 성리학이 확립되며 더욱 악화한다. 이후 조선은 더욱 남성주의적 사회로 바뀌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열등해졌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사회적 진출은 여성이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힘들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도록 강요받으면서 완전히 차단되었다. 따라서 결혼 후 여성에 대한 많은 요구 사항들이 뒤따랐으며 이러한 사회적 관습은 여성들이 더는 사회 활동에 관심을 두지 않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회적 현상은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이어졌다. 남아 선호는 부계 중심의 사회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이다. 이는 또한 성차별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출산은 기혼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에 아들의 탄생과 그 수는 아내의 지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아들을 낳지 않았다면 그것은 칠거지악 중 하나로 이혼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많은 부모, 특히 어머니들은 여전히 고전적인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인 방식으로 아들을 키운다. 가부장적으로 아들을 키우는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은 폭력적인 행동의 허용이다. 이런 유형의 어머니는 소년이 소녀보다 더 적극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아들의 공격 행동을 허용한다. 예를 들어 소녀와 소년이 둘 다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 어머니는 딸을 꾸짖고 아들은 용서할 것이다. 이런 반응은 그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부추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은 '남자아이들은 항상 산만하고 거칠어'라고 생각을 굳히게 된다. 또한 이런 육아 패턴은 부모가 자기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비난하는 정당화 유형으로 바뀌기도 한다. 가령 아들이 다른 어린이를 때린다면, 부모는 "네가 우리 아들에게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때린 거야"라고 말함으로써 아들의 폭력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성인이 자신의 나쁜 행동을 수락하거나 감싸줌으로써 자신의 "남자다운" 행동을 더욱 강화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특히 남성들의 이 같은 대응 방법은 훗날 결혼을 해서도 가정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았으니 맞을 짓 한 거지, " "말대꾸를 했어, " "집안일을 못 해서" 등의 말을 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두 번째 유형은 폭력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부모는 아들에게 "남자다운" 행동을 하도록 장려한다. 종종 부모는 아들에게 칼싸움 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거친 운동을 하도록 교육하는데 그들은 아들이 너무 유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래의 여성차별과도 관련이 있다. 여성을 나약하고 열등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아들이 남성성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압박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유도/방조하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여성차별이다. 어머니는 그 자신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이는 "여자애들은 조신하게 있어야지, "라던가 "난 여자애들 징징대고 우는소리 하는 게 제일 듣기 싫어" 등의 언사를 말한다. 이런 언행은 그들이 여성 혐오감을 그대로 나타내며 결국 그들의 아들이 여성들을 무시하도록 만든다. 이런 어머니들은 성장 과정에서 차별을 받았거나 부모로부터 존중받은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 자신이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셈이다.
21세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대변동이 있던 시기로 남아있을 것이다. 1980년 민주주의 운동 이후 여성 운동은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제도를 마련하고 법을 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을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했다. 그런데도 불구,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의식과 관행은 지금까지 사회와 법체계 전반에 걸쳐있다.
한국은 지난 40년 동안 산업 자본주의를 경험해왔지만, 조선 시대에 뿌리내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파괴되지 않고 그 모습만 바꾼 채 유지되어왔다. 산업화가 가져온 핵가족이나 가족의 규모가 줄어든 현대화된 생활조건은 여성의 가정주부로서 해야 할 역할을 감소시키지 않았지만, 주부의 본질적인 역할을 변화시켰다. 남편이 국가 경제 분야에서 특권적인 지위를 공고히 하는 동안, 고등 교육을 받은 아내들은 자기 계발보다는 가족 구성원의 사회적 지위와 임금 노동과 같은 2차 활동에 더 중점을 둔다. 한국 여성들은 다른 어느 가족 구성원보다 특정한 임무를 수행할 것을 강요받는다. 동시에 여성의 지위는 남편의 상대적인 지위에 달려있으며 남편의 지위는 "아내를 직장에 보내지 않고" 가족을 이끌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한국의 수출 지향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산업화는 여성의 노동 참여를 훨씬 빠르게 증가시켰다. 지난 30년 동안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비율은 28%에서 49%로 증가했으며 노동 인구의 여성 비율은 27%에서 41%로 증가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가진 여성의 수가 적고, 여성 고위 간부 및 이사회의 비율이 낮기 때문에 남녀 연봉 평균 격차는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남녀 월급 격차는 37%에 이르렀고 다른 OECD 국가 중에서 최고를 차지했다. 이 현상은 유리 천장, 즉 여성, 장애인, 노인 및 성 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집단이 직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유리천장 또는 구조적 억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유리 천장 현상은 다음 세 가지 원인에 의해서 발생한다. 첫째, 이는 여성의 교육이나 기금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며 여성이 더 높은 위치로 승진하는 하는 것을 방해한다. 둘째, 여성들은 조직과 사회의 편견 때문에 선임직에 들지 못한다. 셋째, 조직 내의 정책과 관행은 여성이 고위 관리직으로 진출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사상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성차별적 대우를 깨고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이미지를 목표로 하여 남성과 동등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권리가 확대되고 여성의 해방과 양성평등을 달성하도록 주장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1970년대 말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근대 초기부터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참정권, 의결권, 의무 교육을 받을 여성의 권리, 남성과 여성의 평등 한 지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는 성폭력 예방, 적절한 성교육 및 환경 보호, 사회 복지 및 근로 환경 개선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분야의 법률 서비스의 제공을 포함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 들과는 달리 한국(남한)만이 남성 징집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을 같은 선상에 배치하는 것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최근, 남녀 사이에 군 복무 가산점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시스템은 전역 군인에 대한 의무 혹은 특혜이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서 60년 동안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국가 영향 측면에서 페미니즘 활동은 국가 구조의 일부를 변화시켰고 더 많은 여성에게 우호적인 법률과 정책을 변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입법부, 사법부, 행정 기관을 포함한 대부분 기능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다.
둘째, 시장 측면에서 볼 때 여성의 노동력 참여 증가는 자원 일부로서 노동 시장의 일부를 구성하고 시장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여성의 시장 참여로 남성 선호 시장 지배 구조와 생산 구조가 양성평등 작업 공간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도 시장은 압도적으로 남성 지배적이며 여성은 자본뿐 아니라 노동력에도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여성이 임시직 및 산업예비군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여성의 취약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 가족 측면에서 성별 권력 관계의 변화가 있었고 성 평등 가족 문화가 전국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가부장제 경향은 여전히 가족 내에서 지속하며, 가사 노동을 하는 많은 여성은 사회에서 거의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넷째, 페미니즘은 시민 사회의 측면에서 여성 사회의 구성과 인적 자원 구성에서 여성의 비율을 높이고 시민 사회에서 여성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며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양성평등 문화로 시민 사회를 변화시켰다. 게다가 페미니즘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사 결정의 관점에서 시민 사회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약하다. 따라서 시민 사회 조직 및 시민 문화의 구성은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특성을 대표한다. 여성 인식의 변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이 대중에게 널리 퍼진 이후로 극적으로 바뀌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생각과 의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느끼는 문제와 비판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집단화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의 의식은 여성이 한 것처럼 빠르게 변하지 않았다. 유교의 가부장제에 의해 야기된 성별 가치와 성역 할은 여전히 전통적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의 성인지 (gender awareness) 사이의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성차별은 사회적 불안의 요소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사회 개혁과 민족주의의 틀 안에 있다. 남녀평등 문화 확산은 한국의 페미니즘이 민족주의의 탁월한 성격을 띠고 국가 발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미래에 전국적인 페미니즘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다. 미래 사회는 국가 간 경계를 갖지 않을 것이므로 서로의 차이점과 다양성을 지금보다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페미니즘은 민족주의의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2014년, 대학교 1학년 때 과제로 쓴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문법 및 오역 계속 수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