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메갈리아'의 탄생 이후 한국에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이 도래한 2018년 현재, 요즘 가장 떠오르는 화두는 '탈코르셋'이다. 탈코르셋이란 '벗다'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어 '탈'(脫)+코르셋이 합쳐진 신조어다. 의미는 단어 뜻 그대로 여성이 사회로부터 학습된 외형/내형적 모습과 가치관을 벗어던진다는 뜻이다. 이는 긴 생머리, 화장 (청순한 화장, 스모키 등 그 종류와는 무관하게), 조신하고 얌전한 행동과 말투를 포함한 한 개인 또는 집단의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통칭한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가부장제에서의 탈피를 지향하고 있으며 성별 이분법 적인 사고를 벗어나 여성을 억압하는 다양한 사회적 규범을 깬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또한 이들은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탈코 #탈코르셋_인증 #탈코전시 등의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정보를 얻는다. 자신이 어떻게 탈코를 접하게 됐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간증을 하는 것인데, 아직 코르셋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감화를, 이미 벗어던진 이에게는 일종의 자매애를 느끼게 한다.
단순히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미용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 편하고 질이 좋은 의류를 찾아 입는 것,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사회적 표준으로 만드는 것이 이 운동의 본질이다.
탈코르셋 운동이 인터넷상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를 비판하는 백래시 현상 또한 뒤를 이었다. 그중에는 여자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눈요깃감이 되어주지 않을 것에 분노한 남성들이 있었고 화장과 긴 머리는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코르셋이 아니며 때문에 탈코르셋을 반대한다는 여성들이 있었다.
백래시 중 하나는 페미니스트들이 탈코르셋을 너무 강요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코르셋을 입지 않음으로써 당하는 불이익과 코르셋을 입음으로써 입는 불이익 (있기나 하다면)을 비교해본다면 강요라는 단어는 조금 과한 게 아닌가 싶다. 여성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곧장 분홍색과 꽃, 리본이 주를 이룬 옷과 장난감에 둘러 쌓인다. 마트에는 여아, 남아용 완구를 따로 구분해 팔고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사회가 정해진 규범대로 교육받는다.
탈코르셋은 단순히 '편함'을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꾸미는 게 귀찮고 게을러서도 아니다. 사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은 알고 있다. 코르셋으로 얻은 권력은 남성의 그것과 동등하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코르셋을 벗는다는 것은 부모님의 잔소리처럼 아주 사소한 불편에서부터, 관계의 단절, 회사에서의 해고, 심하게는 폭력의 대상이 되기까지 감수해야 할 위험 요소가 도처에 깔려있음을 의미한다. 한순간의 유행이라고 하기엔 그 결과가 너무 공격적이고 위험부담또한 크다. 오히려 코르셋을 입는 것보다 훨씬 큰 용기와 다짐을 필요로 한다.
젊은 페미니스트는 이제 엄마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고자 한다. 엄마는 비록 남자 형제들에게 밀려 대학도 못 가고, 결혼 때문에 취직도 못했지만 이들은 다르다. 남자 형제들에게 밀려 수없이 낙태를 당한 끝에 살아남은 질긴 운명이 아닌가. 몇몇 기자들은 탈코르셋이 실패할 이유를 근거 없이 들어대며 전기세가 아까울 정도의 질 낮은 기사를 써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이 실패할 수 없는 데는 新페미니스트들의 근성에 있다. 남동생과 오빠에게 양보해야 했던 계란 프라이, 고기 한 점, 좋은 옷 한 벌, 친척이 준 용돈, 사회적 불평등, 성희롱과 성폭력, 애인의 가스 라이팅을 모두 겪으며 더 단단해진 세대이기 때문이다.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나 또한 내가 입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이지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패딩이 두껍게 들어가 갈비뼈를 아프게 조여왔던 브래지어, 레이스가 까끌거려 거추장스럽고 빨래하기도 불편했던 빅토리아 시크릿 팬티, 한 달에 한번 비싼 돈을 주고 아크릴을 붙여 연장했던 네일아트, 하이웨이스트 스키니진, 컨투어링 용 화장 제품과 수십 개의 빨간 립스틱, 귀찮아도 '미관'상 해야만 했던 제모, 고데기, 등등.
아직은 눈썹을 그리지 않으면 허전하고, 머리도 단발로 유지 중이지만 2년 전과는 그 차이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크다. 우선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이 10-15분으로 줄었고, 소비도 크게 감소했다. 화장을 하지 않자 피부는 금세 깨끗해졌으며 거울을 보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대신 그 시간에 글을 쓰거나, 잠을 더 자는 등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코르셋을 입지 않는 것이 디폴트가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조금이나마 일조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탈코르셋은 거창하지 않다. 화장품을 하나씩 줄이고, 불편하지만 예뻐 보여 가지고 있던 옷들을 버리고 진짜 나 자신을 찾는 것. 그게 전부다.
'겨우 나 하나'가 아닌, '바로 나부터'. 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