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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May 07. 2020

더부스의 몰락과 크래프트 맥주 시장

더부스의 몰락에 관한 기사를 보며



크래프트 맥주는 시장 자체가 작다. 이건 크래프트 맥주의 태생적인 한계다. 크래프트 맥주는 대형 자본과 기업이 만든 획일적인 맛의 맥주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다. 다양한 맛과 창의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획일성은 좋게 말하면 대중성이다. 거의 다수의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는 맛과 가격,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크래프트의 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이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크래프트 맥주의 장점인 다양성과 창의성은 반대로 보자면 대중성이 낮단 얘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장 자체가 작은 것이다. 당장 크래프트 비어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 시장에서조차 크래프트 맥주의 전체 판매 비중은 일부에 불과하고 와인 시장과 경쟁이 겹쳐 성장이 지지부진하다.

이 작은 시장에서 2010년대의 크래프트 맥주 붐과 함께 무수히 등장한 마이크로 브루어리들이 경쟁하니 경쟁이 그 어떤 곳보다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더부스는 이 치열한 경쟁을 만들어낸 초기 업체 중 하나였고 그 덕분에 크래프트 붐과 함께 초기엔 나름대로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고급화를 추구하고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그에 걸맞는 음식의 질적 수준 또한 요구하게 되었다.

더부스는 작년에도 몇번 갔었지만 이 부분에서 매우 부족함이 많았다. 애초에 매장에 주방이라 부를만한게 없는 구조라 맥주와 더불어 제대로 된 메뉴를 내어놓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게다가 피자를 데워 조각으로 팔면서 맥주를 파는 모델은 카피도 쉽다.

그래서 더부스도 그랬지만 마이크로 브루어리들 중에선 마트와 편의점 등의 유통망 뚫기를 시도하는 곳들도 탄생했다.

하지만 이런 유통이야말로 대형 자본과 대중성이 필요한 영역이란 점에서 국내를 기반으로 한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에겐 적합한 경쟁의 장이 아니다. 애초에 크래프트 맥주를 하는 브루어리들이 대형자본과 대중성을 등진게 탄생의 시작 아닌가?

또한 단점은 더 있다. 크래프트 맥주의 소비자층과 마트, 편의점 유통망의 소비자층은 완전히 다른 소비자층이다.

심지어는 같은 소비자임에도 다른 소비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밖에 나가서는 크래프트 맥주를 아낌없이 소비하는 사람도 편의점과 마트에선 x캔 만원 행사에 따라 철저히 소비를 한다. 밖에서 크래프트 맥주 한 잔에 쓸 돈이면 마트에서 매우 훌륭한 크래프트 병맥주를 살 수 있는데 그것 조차 잘 안한단 얘기다.

골목의 전쟁으로 강연 다닐땐 이걸 리처드 세일러의 심리적 계좌(mental accounting)로 설명했는데 뭐 똑같다.

더부스는 선발 진입자였지만 선발 진입자로서 우위가 없는 상황에 있었고 시장은 사이즈가 기대보다 작아서 너무 빠르게 성숙기로 진입했다. 그래서 유통 시장으로 진입을 노렸지만 사실 이 시장은 아예 모든 포지션에서 열위가 되는 시장이었다.

어느 시장이건 성숙기를 넘어서면 인수합병과 더불어 하나둘씩 폐업을 하면서 시장의 경쟁이 어느 정도 완화된다. 지금은 그 단계를 밟는거고 내부적으로 잡음이 이래저래 외부인에게까지 들리던 더부스가 이런 결과를 맞았을 뿐이다. 돈 없어서 퇴직금 못주겠단 논란이 나왔던 시기가 2017년이었다.

더부스의 기사를 보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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