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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Jul 17. 2020

마약과의 전쟁과 투기꾼과의 전쟁

투기꾼을 잡는 것은 과연 좋은 정책목표라 할 수 있을까? 

미국 내에서 마약으로 인한 문제가 증가하고 사회적 문제가 되기 시작하자 1971년 닉슨 행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주1) 마약과의 전쟁. 듣기만 해도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멋진 목표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판정패라는 실패를 낳고 맙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수요가 아니라 공급을 통제하여 마약 가격의 폭등을 불렀기에 마약을 매우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만든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어차피 범죄니까 범죄와 밀접한 조직 입장에선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던거죠. 덕분에 마약의 공급원인 중남미 마약 카르텔도 엄청나게 커집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 부분을 다룬 드라마가 넷플릭스의 나르코스 시리즈죠.



경제적인 측면은 그렇다치고 목표 설정과 실행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어떨까요? 목표를 설정하는 이유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금, 인원, 시간 등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과적인 곳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죠.


이걸 생각한다면 좋은 목표 설정은 실현 가능하고 명확하고 구체적인 정의가 있어야 하며 집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약과의 전쟁은 그런게 없었습니다. 그런게 없었기 때문에 마약과의 전쟁이란 목표 하에 나온 실천 행동이 ‘마약과 관련된 사람은 모조리 잡아서 감옥에 넣는 것’이었죠.


작용은 언제나 반작용을 낳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행동은 부수적인 효과를 부르죠. 때문에 어떠한 행동의 효과 범위가 광범위하면 그로 인한 부수적인 효과도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비폭력 마약범죄자까지 감옥에 보낸 행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감자가 급증하면서 수감 비용도 급증했고 감옥이 모자라서 정작 수감시켜야 할 중범죄자들을 가두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또한 젊은 비폭력 마약사범의 경우 처벌로 인해 교육과 일자리에서 배제되어 이들이 사회에서 영구적인 하층민이 되게 만드는 악순환도 벌어졌고요.


그 덕분에 30년이란 시간, 막대한 행정력과 인력,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붓고도 마약 소비는 못 줄였는데 영구 하층민과 인종 문제를 심화시키고 미국 국내외에 마약조직은 엄청 키운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마약과의 전쟁도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목표 설정이란 측면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봐도 비슷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은 다른 많은 분들이 지적한 바 있으니 목표 설정과 추진/행동 측면에서 보는 것도 좋겠죠.


현 부동산 정책들이 나쁜 목표인 것은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해 목표 설정을 ‘투기꾼’을 잡는 것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투기꾼을 잡으려면 투기꾼이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부터 내려야 합니다. 다주택자가 투기꾼이라고요? 그럼 다주택자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2주택 이상입니까? 3주택 이상입니까? 3주택이라면 감평가 50억의 2주택자는 투기꾼이 아니고 10억의 3주택자는 투기꾼입니까? 2주택자 이상이 투기꾼이라면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까? 투기 목적이 아닌 2주택자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까? 일정 금액을 기준으로 투기꾼을 결정한다면 그 금액이 기준점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 장난 같아보여도 이건 투기꾼 근절이란 목표 설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투기꾼을 근거에 따라 명확하게 정의해야 투기꾼에게 정책을 집중시킬 수 있는 법입니다. 투기꾼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면 뒤따른 정책과 행동들은 투기꾼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난사가 되어버립니다. 그럼 효과적이지 못한거죠.


작용에 반작용이 뒤따르는 것처럼 정책과 행동은 언제나 부수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때문에 정책의 대상 범위가 넓을 경우 부수적 효과의 범위도 넓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쁜쪽으로도요.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불명확한 목표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과 그로 인해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부정적 효과를 같이 고려한다면 설사 투기꾼의 수를 줄여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킨다고 해도 이는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없습니다. 러프한 비유지만 TV가 갖고 싶어서 10억을 주고 TV 1대를 산 행동을 잘 산 것이라 평가하긴 어려운 것처럼요.


그리고 이것은 투기꾼과 부동산가격의 관계가 매우 명확해야만 작동 가능합니다. 부동산도 자산이기 때문에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그 중에서는 투기꾼들의 투기 심리도 있죠. 투기꾼을 잡는 것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려면 투기꾼이 가격에 주는 영향이 다른 모든 요소보다 가장 커야합니다.


그런데 이게 증명된 적은 없습니다. 상관관계조차 나온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애초에 투기꾼에 대한 정의를 누구도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 것을 사실로 믿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투기꾼이 부동산 가격에 어느 정도 영향은 주겠죠. 하지만 그게 우리의 믿음보다 작다면 그 효과는 더욱 떨어지는 셈입니다.


투기꾼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면 투기꾼은 실체화되지 않은 가상의 존재에 가깝습니다. 가상의 존재와 싸워서 이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투기꾼을 잡는게 목표라면 근거에 기반하여 투기꾼을 명확하게 정의내리는게 제일 먼저 진행되어야 할 작업인거죠.


그리고 투기꾼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나면 투기꾼이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도출해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온 투기꾼의 영향이 다른 모든 요소보다 크다면 투기꾼을 잡는데 집중해도 충분하지만 다른 요소가 더 크다면 투기꾼 근절대신 다른 요소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죠.


현재는 실체가 불분명한 투기꾼이 가격을 폭등시킨다는 ‘신념’으로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 부동산 정책은 목표 설정과 실행, 달성 가능성이란 모든 측면에서 좋게 평가하기 힘들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이 내용을 1350자로 압축하다보니 꽤 힘들었던게 이번 기고였습니다.


주 1.

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고 현재 전문가들의 견해는 당시 히피즘과 반전운동을 궤멸시키기 위해 닉슨 행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것이 주류입니다. 물론 그 기조는 닉슨 이후의 대통령에게도 쭈욱 이어져 지금의 실패를 낳은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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