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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Jan 07. 2021

스타벅스에서 카페베네, 그리고 그 몰락

2000년대 커피프랜차이즈 전쟁과 그 뒷 이야기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고한 2000년대 커피프랜차이즈 전쟁과 카페베네의 이야기다. 덕분에 2000년대 커피프랜차이즈 전쟁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consumer/976129.html?fbclid=IwAR28R19QZi4miz9fTiR7E6xlspjdBQd3CsLL3lW7hwp0QNSgNP_XaUKRrDA#csidx487582d34d03f499288a82102f833cd


한겨레의 기사를 활용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특성과 분량의 한계 때문에 생략한 내용들이 제법 된다. 그래서 구구절절하게 원래 원고를 다시 옮겨 쓰는 것보다 생략한 내용을 별도로 정리해서 옮겨본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내용들은 누군가의 썰이 아니라 공개된 기사와 인터뷰, 책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밝힌다.

1. 엄밀히 따지자면 한국의  커피 프랜차이즈는 88년에 등장한 쟈뎅이었다.



본문에서는 첫 커피 프랜차이즈를 할리스로 썼지만 사실 첫 프랜차이즈는 쟈뎅이었고 이후 도토루 등의 업체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80년대 말에 1차 커피붐을 맞았다. (지적해주신 노모뎀님께 감사)

쟈뎅의 점포수는 가장 많았었을 때 130여개에 이를 정도로 크게 흥했지만 이 80년대의 커피붐은 90년대에 들어 급격하게 사그러든다. 쟈뎅은 사업영역을 변경했고 도토루의 경우는 아예 96년에 국내에서 완전히 철수해버리고 만다. 증가한 소득에 맞춰 소비문화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던 이 때에 오히려 커피붐은 반짝 후 사그라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현재 일반화된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일과 소비유형은 저 시절과는 다르기에 현재의 유형으로 범위를 좁혀 놓고 볼 경우 스타벅스의 스타일을 카피한 할리스를 첫 프랜차이즈로 볼 수 있겠다. 할리스가 자사의 홈페이지에 걸은 최초의 커피 프랜차이즈란 것도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라 추정한다.

2. 스타벅스의 한국 진출 시점은 매우 빨랐다.    

지금이야 스타벅스가 커피 제국을 형성한 때지만 IPO를 하던 92년만 하더라도 점포수 165개였던 성장성 높은 프랜차이즈 중 하나였다.

스타벅스가 북미 밖을 벗어나 처음으로 글로벌 진출을 한 시기는 96년 여름으로 이때 일본에 첫 지점을 오픈하며 뒤이어 싱가폴(96)과 필리핀(97)에도 진출을 한다. 점포수는 96년에 1015개, 97년에 1412개로 당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던 인기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 바로 이 시점이다.

신세계가 스타벅스와 계약을 시작한 것도 이때 즈음으로 추정되며 링크 기사 본문에도 언급했듯이 97년 10월에 협상이 완료되었음이 짧막하게 단신으로 언급된다. 1차 커피붐은 이미 꺼졌고 여전히 한국인들은 인스턴트 커피를 즐기던 때다. 만약 계획대로 98년 초에 점포를 오픈했다면 한국은 스타벅스가 4번째로 진출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대기업의 주도로 수입을 하든 아니면 외국 본사가 직접 진출을 하든 글로벌 브랜드가 한국에 진출하는 시기가 대체적으로 단물이 빠진 이후임을 감안하면 스타벅스는 그 진출시기가 매우 빨랐다.

스타벅스 글로벌 진출 전략의 일환 중 하나가 한국이었던 걸 생각해보자. 스타벅스는 이미 제국이 된 지금 봐도 대단한 기업이지만 본격적인 확장 초기에 대단히 기민하게 움직일 줄 아는 기업이었다는 것을 이 타이밍이 보여준다.

3. 강훈대표와 할리스

강훈 대표는 스타벅스TF에 있을때 '이건 된다'라고 생각했기에 나와서 할리스를 차린 것이었지만 사실 잘 안됐다. 애초에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카페란 익숙치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고한 본문에서도 썼다시피 할리스의 본격적인 성장은 스타벅스의 등장 이후부터다. 이때 스타벅스는 승승장구 하고 있었기에 점포를 유치하거나 건물주/투자자를 설득할 때 '스타벅스'를 비교대상으로 내세우는 방식을 취했다. 이것은 스타벅스가 단순히 국내 1위 커피 기업이 아니라 현재의 커피 프랜차이즈 시장을 주도적으로 창출해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되는 아이템'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파괴력과 영향력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있다.

할리스는 강훈 대표와 김도균 대표가 공동 대표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두 대표 간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강훈 대표의 책인 '카페베네 이야기'를 살펴보면 강남 1호점 인테리어를 담당하던 김도균 대표가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며 합류하였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게 김도균 대표에 대한 언급의 전부다.

김도균 대표는 2001년에 할리스를 나와 탐앤탐스를 차렸는데 공동대표란 직위, 그리고 탐앤탐스를 차리는 행보를 보면 할리스에서 한 일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짧게 처리되었을 뿐더러 김도균 대표의 이탈에 대한 거론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원만한 관계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4. 할리스 이후의 강훈 대표

2003년에 CJ플래너스에 할리스를 매각할 당시에 계약 조건으로 매각 이후 2년간 운영을 이끌어나가도록 조항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강훈 대표의 책에 따르면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향후 2년간 동종업계 취업/창업 금지 조항이 걸려있었다.

그래서 할리스를 나온 강훈 대표는 이후 몇몇 사업에 손을 대게 되는데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카페베네에 합류하게 된 것은 3년간의 좋지 못한 결과로 본인 또한 조급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카페베네에 지원서를 보낼때 '할리스 대표'라고 쓰면 부담을 가져 채용을 하지 않을까봐 본부장이라고 직급을 깎아서 넣었다.

5. 강훈 대표와 김선권 대표



감자탕 프랜차이즈로 성공했던 김선권 대표는 커피 프랜차이즈가 인기를 끌자 커피로 사업을 확장하여 천호동에 첫 점포를 차린다. 그게 바로 카페베네다. 그런데 감자탕 프랜차이즈를 하던 방식으로는 카페 운영과 성장이 되질 않아서 영입한 것이 강훈 대표였다.

카페베네에 관해선 두 대표가 쓴 책이 있다. 그런데 강훈 대표가 쓴 '카페베네 이야기'와 김선권 대표가 쓴 '꿈에 진실하라 간절하라'의 내용은 서로 차이를 보인다.

강훈 대표의 책에는 카페베네 내의 실무적인 의사결정에 관한 이야기와 그 이유에 관해 비교적 잘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김선권 대표의 책에는 실무적인 내용은 별로 없고 오히려 책에서 쓴 본인의 생각과 철학이 행동과 상충되는 점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강남에 본점을 차려야 한다는 점은 양쪽 대표들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김선권 대표는 강남에 원래 봐뒀던 매장이 먼저 나가버려서 천호동에 본점을 차렸다고 썼다. 강남에 매장 자리가 그곳 하나 뿐인 것도 아니고 정말로 강남에 본점을 내는 것의 중요성을 본인이 쓴 만큼 믿고 있었다면 그런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이 내용에 대해 강훈 대표의 책에선 강남에 매장 하나 낼 돈이면 천호동에선 10개를 낼 수 있다고 김선권 대표가 반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실질적인 실무를 강훈 대표가 주도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물론 강훈 대표와 김선권 대표도 그리 사이가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 많은 실무를 담당했음에도 김선권 대표의 책에선 강훈 대표가 '내게 소중한 인재였고 내가 몰랐던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다'라고 언급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강훈 대표의 책에서는 김선권 대표를 감자탕으로 성공한 외식업자이지만 커피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는 사람으로 일일이 설득이 필요했던 것으로 묘사된다.

양쪽의 사이가 벌어졌음은 강훈 대표가 망고식스를 차린 직후의 인터뷰에서도 추정할 수 있다. 그 당시 이미 발생하기 시작했던 카페베네의 품질 저하 문제를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논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건 실질적으로 실무를 지휘한 자와 최종 결정권자가 성과에 있어 누구의 공이 더 큰지를 두고 이견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강훈 대표가 아직 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0년에 KH 컴퍼니를 설립한 것도 그런 이견의 결과로 보인다. 강훈 대표는 그렇게 2011년에 퇴사를 하고 망고식스를 새로 오픈한다.

6. 강남, 강남, 강남


커피 비즈니스에 대한 강훈 대표의 생각은 그의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커피는 맛이 아니라 이미지로 소비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관련 이야기는 후술한다)

그가 할리스, 카페베네, 망고식스의 본점을 모두 강남역과 압구정에 세웠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강남역과 압구정이라는 고급 이미지를 갖춘 곳에 점포를 세워야 그 이미지를 갖출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미지가 중요하다 보았기에 마케팅에 매우 심혈을 기울였다. 카페베네가 전개한 스타 마케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사실 이건 강훈 대표가 할리스를 CJ플래너스에 매각할 당시 플래너스의 자회사로 넷마블과 싸이더스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때 정훈탁 대표와의 인연으로 그런 연계 마케팅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망고식스를 오픈할 때도 동일한 전략을 취했다. 강남, 스타마케팅, 협찬과 후원. 이처럼 그의 이력에는 언제나 서비스의 본질보단 마케팅이 더 우선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 카페베네와 망고식스의 몰락

김선권 대표가 경영 능력이 좋은 대표라고는 좋은 말로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열차 위에 올라타 직진만을 외쳐댔다. 경영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는 그로부터 몇년 지나지 않아 드러났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강훈 대표에게도 그리 높은 평가를 내리긴 힘들다. 그가 할리스, 카페베네 등을 거치며 실무적으로 다양한 일을 본인이 주관하고 이끌어 결과를 만들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정작 프랜차이즈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를 놓친 기업가였다.

링크 기사 본문에도 언급했듯이 그는 초기에 양적 성장이 중요하다를 외쳤지만 그는 초기 이상을 넘긴 적이 없는 경영자였고 질적 성장을 추구해본 적이 없는 경영자였다. 그가 질적 관리를 잘 해낼수 있을 것이라는데 나는 의문을 가진다. 실제로 할리스 시절부터 그는 '스타벅스보다 더 큰 토종 카페를 만들겠다'라는 목표를 추구했다. '더 좋은 카페'가 아니라 말이다.

더군다나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엄청나게 바뀐 커피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매번 동일한 전략을 취해왔다. 그의 여러 커리어 궤적을 볼 때, 높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결국 카페베네는 2018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그해 말에 조기졸업을 하긴 했으나 이는 카페 프랜차이즈 전쟁이 끝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20년의 전쟁을 다시 돌아보면 역시 처음 링크한 기고 기사의 제목대로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카페베네, 그리고 그 어떤 기업도 스타벅스를 이긴 적이 없었다. 스타벅스는 국내에 제 2의 커피붐을 일으켰고 이를 통해 시장을 주도적으로 창출해 나간 기업이다. 그때도 지금도 커피 프랜차이즈들은 스타벅스가 만든 그늘에서 커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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