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도서관' 가기 좋은 날.

다가갈 땐 그립고, 헤어질 땐 아쉬운 너에게.

by 개츠비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고 바람 끝이 다소 매서운 전형적인 초봄 날씨, 오늘은 정독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지난해 건물 리모델링 공사로 잠정 폐쇄되었다가 다시 개관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언제 다시 가 봐야지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날씨가 저를 그곳으로 끌어들였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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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안국역에 내려서 1번 출구 밖으로 나오면 마주치는 장면입니다. 가게 앞 풍경이 마치 외국 어느 카페 같아요. 지하철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코스는 윤보선길과 덕성여중고교 사이길이 있는데, 둘 다 운치 있고 고즈넉한 거리 모습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북촌마을 이라는 관광지 답게 외국인 관광객들로 들썩거리고 사방에서 외국어가 넘쳐나는 거리로 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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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독 도서관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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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돌조각이 정독 도서관을 나타내 줍니다. 그 옆에는 이런 시구절이 붙어 있더군요.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날, 그 시간
책을 읽고 있던 네 옆 자리에 앉았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그날, 그 시간
나의 옆 빈자리에 네가 앉았을 때부터
몸이 굳어 꼼짝할 수 없었다는 걸.



갑자기 센티 모드로 전환되었나?
그 옆으로는 다소 무거운 사육신 성삼문 선생 살던 곳이라는 안내와 1900년 고종황제 때 지어진 학교 유래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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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면, 수령이 300년 된(추정) 나무, 넓은 잔디밭, 잘 꾸며진 조경이 마치 어느 대학 캠퍼스에 들어온 느낌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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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서관으로 들어가 책을 읽습니다.
120년 역사를 지녀서 인지 건물 구조는 공간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참 어이없지만, 자꾸 보고 또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건물 나름의 맛도 느끼게 되어 불편함은 예스러움에 녹여집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는데 저처럼 여러 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열람실에서만 공부하는 입장에선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고 넓어졌다는 점 외에 특별히 뭐가 바뀌었다는 건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어요. 여전히 칙칙하고 어두운 바닥, 낡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사람들··· 하기야, 정독 도서관은 그 점이 매력이기도 하죠.

예나 지금이나 작은 유리 창문 너머로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너무 좋아요. 그렇게 감동적이지도 않은 일상의 모습에 한번 홀리면 이삼십 분이 후딱 지나갑니다.


어스름이 내릴 즈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섬주섬 책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저를 붙잡는 나무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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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가지마다 잎눈을 뚫고 나온 꽃봉우리들이 파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꽃을 피울 반반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모습입니다. 아마도 다음에 올 땐 저 녀석들이 제철을 만난 듯 활짝 펴 있겠죠.



정독도서관을 떠나올 때마다 매번 뒤에 어떤 묘한 감정을 두고 온 느낌이 들어요. 그 느낌을 딱히 뭐라 짚을 순 없지만, 일종의 아쉬움이나 안스러움 또는 둘이 섞인 그 무엇이라고 할까요?


그건 아마도 이 도서관을 처음 이용할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 추억, 사연을 함께해 준 고마움과 너무 낯설어진 도서관 밖의 거리를 보면서 너만큼은 절대 변하면 안 돼! 너까지 변하면 안 돼! 라는 간절한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변해 버린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며 제가 정독도서관에 바라는 또다른 바람이기도 하겠네요.

하지만 내 바램을 들었는지 어쩐지 오늘도 도서관은 떠나는 제 뒷모습을 멀리서 묵묵히 지켜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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