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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r 09. 2024

'정독도서관' 가기 좋은 날.

다가갈 땐 그립고, 헤어질 땐 아쉬운 너에게.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고 바람 끝이 다소 매서운 전형적인 초봄 날씨, 오늘은 정독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지난해 건물 리모델링 공사로 잠정 폐쇄되었다가 다시 개관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언제 다시 가 봐야지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날씨가 저를 그곳으로 끌어들였는가 봅니다.



3호선 안국역에 내려서 1번 출구 밖으로 나오면 마주치는 장면입니다. 가게 앞 풍경이 마치 외국 어느 카페 같아요. 지하철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코스는 윤보선길과 덕성여중고교 사이길이 있는데, 둘 다 운치 있고 고즈넉한 거리 모습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북촌마을 이라는 관광지 답게 외국인 관광객들로 들썩거리고 사방에서 외국어가 넘쳐나는 거리로 변하죠.)



드디어 정독 도서관에 도착했어요. 

 거대한 돌조각이 정독 도서관을 나타내 줍니다. 그 옆에는 이런 시구절이 붙어 있더군요.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날, 그 시간
  책을 읽고 있던 네 옆 자리에 앉았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그날, 그 시간
  나의 옆 빈자리에 네가 앉았을 때부터
  몸이 굳어 꼼짝할 수 없었다는 걸.



 갑자기 센티 모드로 전환되었나?
 그 옆으로는 다소 무거운 사육신 성삼문 선생 살던 곳이라는 안내와 1900년 고종황제 때 지어진 학교 유래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면, 수령이 300년 된(추정) 나무, 넓은 잔디밭, 잘 꾸며진 조경이 마치 어느 대학 캠퍼스에 들어온 느낌을 안겨줍니다.  



 드디어 도서관으로 들어가 책을 읽습니다. 
 120년 역사를 지녀서 인지 건물 구조는 공간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참 어이없지만, 자꾸 보고 또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건물 나름의 맛도 느끼게 되어 불편함은 예스러움에 녹여집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는데 저처럼 여러 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열람실에서만 공부하는 입장에선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고 넓어졌다는 점 외에 특별히 뭐가 바뀌었다는 건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어요. 여전히 칙칙하고 어두운 바닥, 낡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사람들··· 하기야, 정독 도서관은 그 점이 매력이기도 하죠. 
 
  예나 지금이나 작은 유리 창문 너머로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너무 좋아요. 그렇게 감동적이지도 않은 일상의 모습에 한번 홀리면 이삼십 분이 후딱 지나갑니다.  


어스름이 내릴 즈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섬주섬 책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저를 붙잡는 나무가 있더군요.  

  백목련!
  가지마다 잎눈을 뚫고 나온 꽃봉우리들이 파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꽃을 피울 반반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모습입니다. 아마도 다음에 올 땐 저 녀석들이 제철을 만난 듯 활짝 펴 있겠죠. 
  



 정독도서관을 떠나올 때마다 매번 뒤에 어떤 묘한 감정을 두고 온 느낌이 들어요. 그 느낌을 딱히 뭐라 짚을 순 없지만, 일종의 아쉬움이나 안스러움 또는 둘이 섞인 그 무엇이라고 할까요?  


   그건 아마도 이 도서관을 처음 이용할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 추억, 사연을 함께해 준 고마움과 너무 낯설어진 도서관 밖의 거리를 보면서 너만큼은 절대 변하면 안 돼! 너까지 변하면 안 돼! 라는 간절한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변해 버린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며 제가 정독도서관에 바라는 또다른 바람이기도 하겠네요.
 
  하지만 내 바램을 들었는지 어쩐지 오늘도 도서관은 떠나는 제 뒷모습을 멀리서 묵묵히 지켜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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